금융 권력의 이동

저   자
론 처노(역자: 노혜숙)
출판사
플래닛
가   격
12000
출판일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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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금융업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펀드 붐에이르기까지 지난 200년 동안 금융 산업이 전개된 방식을 금융 권력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개관한 책. 지난 200년 동안의 금융 산업의 전개과정을 자본 투자자, 자본 소비자, 은행가 등 금융 참여자 사이의 힘의 균형과 이동이라는 한 가지 초점에 맞추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역사적으로 고도 금융의 세상에 사는 주민들은 일반 투자자들을 멸시해 왔고, 상류층자본가들은 일반 투자자들의 저금 따위는 사업이나 정부의 재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냉대했다. 하지만 노름꾼이나 천민 취급을 받던 일반투자자들은 이제 세계 금융 시장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되었다. 이 책은 시곗줄, 줄무늬 바지, 두툼한 시가를 문 배불뚝이 남자들의 사라진 세계에서시작해서 금융 권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펀드 붐에 이르기까지, 지난 200년 동안의 금융 역사를 통해 자본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 저자 론 처노
시사평론가이자 최고의 금융 전문저술가. 예일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의 명문 싱크 탱크인 20세기 펀드에서 금융정책 수석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경제사와 금융사전문 저술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에 서평과 칼럼을 싣고 있고, CNN, NBC, CBS 등의 뉴스 프로그램에서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금융제국 J. P. 모건』『워버그 가문』『타이탄: 존 D. 록펠러의 삶』『알렉산더 해밀턴』 등이 있다.


■ 역자 노혜숙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다. 한국산업은행과 바클레이즈은행 서울 지점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커넥티드』『세팅 더 테이블』『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창의성의 즐거움』『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등이있다.


■ 차례
서문 


은행가의 죽음 
 기업 vs 은행 vs 투자자 
 은행가의탄생 
 로스차일드와 베어링브라더스 
 우리를 찾아오지 마라, 우리가 부를 것이다 
 미국식 은행모델과 유럽식 은행 모델 
 소액 투자자의 승리 
 록펠러, J. P. 모건과 겨루다 
 관계형금융과 거래형 금융 
 IBM, 모건스탠리에 승리하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 
 은행업의 죽음
 뮤추얼 펀드 
 포괄적인 금융서비스 산업으로의 발전 
 

에필로그  

금융 명가 J. P. 모건  

금융 명가 워버그



도서요약

금융 권력의 이동


우리를 찾아오지 마라, 우리가 부를 것이다
존 피어폰트 모건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실크햇과 프록코트 차림의 포악하고 오만한 배불뚝이 악덕 사업가, 타이쿤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그와 동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는 이와 전혀 달랐다. 19세기에 영국은 경제적 번영으로 얻은 잉여 자본을 고수익을 좇아 국경 너머 퍼트리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영국 투자자들에게 미국은 지금의 멕시코나 브라질과 다를 없는 함정으로 가득하고 채무 불이행이라는 고약한 버릇을 가진 ‘제3세계’ 국가였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따돌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 철도 주식의 높은 수익에 현혹된 영국 투자자들은 짧은 기억력과 너그러운 관용으로 지갑을 열었다. 미국 철도 회사들은 자본을 필요로 했고 영국은 돈을 빌려줄 여력이 있었으며 존 피어폰트 모건은 변덕스러운 투자자들을 불러 모았다. 영국인들은 수많은 사기꾼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 같은 미국의 철도 황제를 반갑게 맞이했다.


철도는 자연스러운 독점 사업이었지만 남북전쟁 후에는 과열경쟁이 일어났다. 시장 점유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동업 조합이 생기기 전에 모건 은행은 그러한 협상을 위해 은밀한 모임을 제공했다.


모건은 설득의 대가였지만 끝없이 다투는 철도 회사들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인 통제력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는 1893년 다수의 철도 회사들이 파산했을 때 새로운 전략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철도 회사들을 재편하면서 모건은 그들의 고정 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낮춘 채권을 발행하는 한편, 투자자들에게는 철도 회사들이 소유한 땅과 광산에 대한 선취권을 주는 것으로 구슬렸다. 그는 과거의 설득 방식을 버리고 철도 회사들을 운영하는 ‘의결권 신탁’을 구성했다. 철도 회사들은 모건에게 그런 힘을 주면서 또한 100만 달러의 수수료를 바쳤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 철도의 3분의 1이 J. P. 모건의 관리 아래 들어갔다.


철도회사 재편으로 자원을 보강한 모건은 새로운 기업 합병을 위해 촉매 역할을 할 준비가 되었다. 뉴욕, 필라델피아, 런던, 파리를 연결하는 제국을 지휘하면서 그는 국내와 해외의 공동출자를 통해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의 대형 합병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1890년대 이전에 미국 기업가들은 주로 부유한 투자자들과 지방 은행에서 자본금을 조달했다. 이제 세기말에 미국 산업이 잉여 자본을 생산하면서 모건을 비롯한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외국 자본의 의존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그 결과 대규모 합병에 의해 1901년 최초의 10억 달러 기업인 U. S. 스틸이 탄생했다. 뒤이어 이듬해에 모건은 영농설비 트러스트인 인터내셔널 하비스터를 설립했다.


1900년대 초기에는 기업들이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보다 활동 범위는 물론 인지도도 훨씬 낮았다. 따라서 모건은 막 설립한 기업들에게 그의 자본뿐 아니라 불안한 투자자들에게 이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 돈을 투자해도 안전하다는 보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J. P. 모건과 금융계 동료들은 고객들로부터 매우 유리한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모건은 기업들이 카르텔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월스트리트의 은행들 사이에서 일종의 카르텔을 주도했다. 『금융제국 J. P. 모건』에서 나는 최고 은행들과 그 대출자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불문율을 ‘은행가들의 신사협정’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러한 협정 하에서 기업들은 주거래 은행과의 배타적이고 포괄적인 관계에 합의했다. 그들은 만일 다른 은행과 상의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중하게 문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암묵적인 합의 하에 은행들은 다른 은행 직원들을 빼오거나 가격 경쟁을 하지 않았으며, 물론 적대적인 인수합병도 하지 않았다. 은행가들의 신사협정은 경쟁을 완전히 금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은행이 고객 숫자를 늘리고 경쟁자들로부터 고객을 훔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 협정의 의도는 은행 간의 경쟁을 어느 정도 제한해서 기업들보다 은행들의 힘이 약화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월스트리트와 더 시티의 전통적인 은행들이 간판 같은 아주 하찮은 문제에서 몸을 사렸던 로즈버드 수수께끼로 돌아가자. 은행에 간판이 없다는 사실은 은행가가 고객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제왕적인 인물이며, 그가 하는 사업은 ‘우리를 찾아오지 마라, 우리가 부를 것이다’라는 가정 하에 경영이 되며, 새로운 고객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렇게 지체 높은 양반을 대리인으로 모시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며, 그는 빈틈없고 신중하게 일하며 평범한 세상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로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간단히 말해 간판의 부재는 자본 제공자와 소비자 사이의 투장애서 프라이빗 뱅커의 승리를 의미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영광은 지난 과거가 된다. 1914년 새로운 월스트리트 23번지 건물이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대중의 반격이 진행 중이었고 그 근엄하고 비밀스러운 건물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이 퇴색해가고 있었다.


관계형 금융과 거래형 금융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1920년대 월스트리트의 부흥은 상당 부분 그 뜻밖의 전쟁에 의한 결과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1920년대 많은 대형 은행들이 저축과 투자의 오래된 차이를 씻어내기 위해 그 자신과 비슷한 이름의 계열 증권사를 설립했다. 1920년대는 새로운 금융 상품들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 시대에는 뮤추얼 펀드로 알려진 단위형 투자신탁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뮤추얼 펀드에 투자하는 주요 이유는 안전성과 분산 투자의 장점 때문이지만 1920년대의 뮤추얼 펀드는 얼마 안 가 투기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많은 과다차입 투자신탁들이 또 다른 과다차입 투자신탁에 투자하면서 부채 피라미드가 계속 쌓이다가 결국 1929년 10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 사람들을 포함해서 주식 시장 붕괴가 모든 가정에 영향을 미칠 지속적인 공황의 서막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표면적으로 1930년대 금융 시장은 광풍이 휩쓸고 간 후 오랜 휴식을 취하며 빈사 상태에 빠진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 죽은 듯한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는 이미 자기 비판과 수정 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 1920년대의 손쉬운 신용거래 보증금 제도를 폐지하는 것으로 뉴딜의 입법자들은 미래의 강세장으로부터 투기적인 거품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 모든 입법 규정 중에서 전후 세계의 주주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만든 것은 강력한 정보 공개를 요구한 1933년의 증권법이었다. 그 법은 은행가들에게서 정보 독점을 빼앗았다. 기업들에게 등록명세서를 제출하게 하고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기업의 내부자들과 밖의 소액 투자자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했다. 어둠에 가려 있던 은행가와 고객이 관계가 갑자기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는 50년 동안 분명하게 눈에 띄지 않았다.


뉴딜 개혁가들이 글래스-스티걸법을 통과시킨 이유는 일부 은행들이 몰래 부실 대출을 따끈따끈한 새 증권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그때까지 유행하던 종합금융 방식이 막을 내리고,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상업 은행과 증권을 발행하고 거래하고 분배하는 투자 은행으로 나뉘어졌다. 미국 메인스트리트의 은행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증권업에 손을 대지 않았으므로 글래스-스티걸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모건 하우스를 비롯해서 로어 맨해튼의 미로에 위치한 대형 금융사들에게 그 법은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대공황 시기에 긴축을 하고 수익성 높은 사업을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빴지만 전통적인 은행가 시스템이 붕괴됨으로써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제 종합 금융사만이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 대출을 받고 증권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은행이 필요했기 때문에 은행가들은 그토록 두려워하던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물론 은행가들의 신사협정을 수정한 형식 - 즉 투자 은행이 특정 고객의 모든 증권 공모를 맡아서 처리한다는 - 을 주장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후 10년 동안 그렇게 했다. 동시에 그것은 기업들에게 모든 자금 필요에 대해 조언을 하는 우주의 전지전능한 지배자로서의 존 피어폰트 모건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파괴했다.


IBM, 모건스탠리에 승리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힘든 시간을 겪은 후에 투자자들은 대공황이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거대하고 자극적인 충격(경기부양책의 최종 실험)으로 정신을 차린 미국 경제와 주식 시장은 1930년대의 오랜 침체 상태를 털고 일어났다. 1954년 다우존스 공업평균지수는 마침내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직전에 달성했던 수준을 회복했다. 독일과 일본이 전쟁으로 쇠약해져서 세계 시장에서 강한 경쟁 상대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잠시 황홀한 밀월을 즐겼다. 그 기간 동안 미국은 자본과의 연결을 축적했고 신용도 평가등급이 급등했으므로, 경제적 통찰력이 생기면서 영원히 은행가들의 손아귀에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오래된 주종 관계는 글래스-스티걸법 때문에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었다. 모건스탠리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순종적인 고객들에게 제시했던 고압적인 정책들을 생각해 보자. 테어도어 루스벨트 시대의 피어폰트 모건과 마찬가지로 모건스탠리는 증권 공모에서 독점적인 관계를 요구했고 몇 가지 고대 의식을 계속했다. 그들은 단독으로 인수를 관리했으므로 인수단의 구성원들을 선택하고 충분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모건스탠리는 그 외에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 조간신문의 상단 왼쪽에 인수단 구성원들을 열거하는 직사각형의 묘비명 광고에는 모건스탠리의 이름만 고독한 영광 속에 따로 덩그러니 올라가 있었다. 게다가 그 광고는 ‘도널드슨 슬로프’라고 하는 특별한 서체를 사용해서 인쇄해야 했다. 모건에 관련된 모든 안내는 그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기에 알맞은 어두운 감청색을 사용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다소 미친 짓이었지만 제너럴 모터스, U. S. 스틸, 제너럴 일렉트릭, AT&T, IBM 등 내로라하는 최고의 기업들이 그러한 전횡적인 규칙에 복종했다.


월스트리트 금융 명가들이 계속 기업 고객들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 일단의 영리하고 공격적인 금융사들은 더 나은 전략을 갖고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대형 투자 은행들’은 오랫동안 증권 거래를 품위가 없다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은행가들의 속물적인 혐오감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살로몬브라더스와 골드만삭스는 그들의 트레이딩 업무를 활용해서 새로운 기관 투자자들, 연금 상품, 그리고 대규모 주식 거래로 바쁜 은행의 신탁 업무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에서 영세농 취급을 받던 신생 금융 회사들은 염치 불구하고 기관 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모건스탠리, 쿤 로브 등이 지배하고 있던 시장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기특하게도 모건스탠리는 소매 유통망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에서 깨어나 트레이딩 업무와 유통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시작해서 완전한 투자 은행이 되었다. 반면 1950년대에 쿤 로브를 비롯한 다른 경쟁자들은 꾸벅꾸벅 졸다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1979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IBM이 기업들이 도매 금융의 포로로 잡혀 있던 오랜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IBM은 모건스탠리가 오랫동안 거래해온 투자 은행이었지만 모건의 규칙을 무시하고 공격적인 야심가인 살로몬브라더스를 데려와서 10억 달러 주식 발행을 모건스탠리와 공동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모건스탠리의 이사들은 그런 전례를 만들면 다른 고객들까지 따라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IBM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면 IBM이 굽히고 들어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오판이었다. IBM은 유유자적하게 살로몬브라더스가 모건스탠리 없이 그 새로운 주식 발행을 관리할 거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마법이 풀리면서 노예들이 농장에서 해방되자 다른 금융사들이 너도나도 모건스탠리의 고객들을 빼앗아가려고 달려들었다. 오래지 않아 모건스탠리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은행가들의 신사협정에 의한 품위 있는 경쟁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의 고객들을 빼앗고 있었다. 그러한 치열한 경쟁은 피어폰트 모건 시절 이래 개혁가들이 지향해온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목표는 법적인 결정이나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시장의 힘에 의해 달성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주식 시장이 지배하는 월스트리트가 막을 올릴 무대가 세워졌다.


관계형 금융의 세계가 쇠퇴하고, 대신 그 자리에 신속하고 익명으로 진행되는 훨씬 불편한 거래형 금융의 세계가 들어섰다. 오래된 일부일처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진 기업 고객들은 여러 금융사들과 흥정을 했다. 그들은 여러 은행에서 각각 다른 서비스를 받았고 최고의 조건으로 협상하기 위해 은행들을 경쟁적으로 유도했다. 대기업들은 저마다 국제적인 사업을 하면서 외국 은행들과 거래하며 해외 자문들의 정보망을 따로 만들었다. 더욱 곤혹스러운 일은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기관 투자자들과 직접 거래를 하면서 은행가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중개인의 힘은 급속도로 줄어든 반면 자본 제공자와 소비자의 힘은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월스트리트를 압박했다.


은행업의 죽음
피어폰트 모건의 전성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지금 ‘유럽식 모델’이라고 부르는 은행가가 지배하는 경제의 정점이었다면, 1980년대의 월스트리트는 순수하고 정제된 형식으로 주식 시장에 기초한 경제의 ‘미국식 모델’을 구현했다. 1980년대 관계형 금융이 무너지면서 보수적인 은행가들이 두려워했던 일들(기업 매수, 정크 본드, 주식 매점, 자산 박탈)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모든 기업이 갑자기 잠재적인 인수 대상이 되어 주식 시장의 노리개처럼 변해버렸다. 투자자들의 변덕, 투자 관리자, 차입 매수와 기업 사냥꾼들에게 휘둘렸다. 1982년에 시작된 강세장에서 기업들은 차례로 합병 당했고 기업 인수의 사슬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 혼란의 시기가 끝났을 때 많은 기업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 비극은 기업들이 언변이 뛰어나고 성미가 불같은 타이쿤들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 더 나쁜 일들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다행히 그 파괴를 어느 정도 보완해 주는 긍정적인 면들도 있었다. 기업 경영자들과 은행가들이 모여서 대중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던 오래된 사교계가 해체되었다. 대신 기업은 주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보편적인 수행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미국의 모든 CEO는 이제 회사의 주가가 매일 자신의 수행에 대해 평가하고 앞으로 남은 재임기간을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전통적인 사업이 기울고 고객 연결이 무너지면서 월스트리트의 금융 명가들은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고 1980년대에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는 전략가이자 능란한 협상가로 변신했다. 과거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세련된 태도로 감정을 자제하고 닫힌 문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일했지만, 새로운 타입의 은행가들은 유명세가 중요했으므로 기업 사냥꾼들과 함께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그 대가로 증권인수 사업의 수익을 무색하게 하는 수백만 달러의 수수료를 받았다. 또한 합병 작업에 두 가지 돈이 되는 부업을 접목했다. 인수 자금을 위한 단기 브리지론을 제공하고 정크 본드를 발행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1980년대 인수 전쟁은 기업들이 역사적 은행가들보다 더 커지면서 다른 대안을 간절히 찾고 있던 월스트리트에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1980년대에 투자 은행들은 합병 사업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유리한 고지를 발견했지만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다. 최근 눈에 띄게 기업들은 투자 은행가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증권 인수를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합병의 4분의 1 이상이 고가의 수수료를 받는 금융 조언자의 도움 없이 행해졌다. 하지만 투자 은행가의 역할이 그렇게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많은 기업들이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이 ‘공정성 심사’에 의거해서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인지 확인한 후에 계약서에 서명하는데, 투자 은행들은 단지 그 일을 해주고 약간의 수당만 받으면서도 홍보 목적을 위해 전체 계약 금액을 그해의 인수합병 실적에 추가해서 숫자를 부풀리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의 고위 경영진은 법률가, 회계사, MBA 출신 등 몇 차례 인수 전쟁을 치르고 나서 은행가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한때 월스트리트 은행가들 앞에서 굽실거리던 기업들이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사들은 은행가처럼, 즉 금융 중개인처럼 행동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들에게는 수수료에 기초한 업무, 특히 외국 정부에게 민영화에 대해 조언하는 업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중개 수수료, 특히 소매 네트워크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주식, 채권, 선물, 옵션, 외국 통화 등으로 거액의 ‘자산’ 거래를 하는 자본 제공자로 가는 변화에 성공했다. 그들은 개인연금 펀드, 대학 기부금과 같은 제도와 함께 돈을 투자하는 대규모 주식 매점 기금을 만들어서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인 투자자로서 기업에 지분을 갖고 있다. 아마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분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관리하거나 그들 자신의 뮤추얼 펀드를 관리하는 포트폴리오의 운영일 것이다. 트레이더, 세일즈맨, 연구분석가 등 그 모든 투자 은행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기관 투자자와 소액 투자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한때 기업 고객들에게 왕족 대접을 했던 것처럼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이제 금융계의 새로운 중재자가 된 뮤추얼 펀드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뮤추얼 펀드
J. P. 모건 시대의 타이쿤들에게는 언젠가 미래에 메인스트리트(월스트리트가 뉴욕의 ‘증권가’이며 미국의 전반적인 금융 시장과 금융 경제를 의미한다면 메인스트리트는 눈에 보이는 상품과 돈이 거래되는 실물 시장, 또는 보통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물 경제’를 의미한다)의 수천만 소액 투자자들의 쌈짓돈이 모여서 월스트리트의 중심 자금을 형성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공상이나 헛된 망상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난 후 소매 금융 세계가 월스트리트의 도매 금융 세계를 점령했다. 주식 시장의 영원한 봉인 소액 투자자들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 되었다. ‘작은 사람들’이 각자 떨어져 있을 때는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지만 이제 뮤추얼 펀드 안에서 함께 모여 월스트리트의 권력 계급을 거꾸로 뒤집어놓았다. 1980년에는 미국 가정의 6퍼센트 정도만이 시험 삼아 뮤추얼 펀드에 투자했다. 1995년에는 거의 3분의 1이 합류했고, 그 숫자는 뮤추얼 펀드 투자에 점점 더 많은 퇴직금 계획이 합쳐지면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1996년에 미국인들은 한 달 평균 200억 달러씩 2,350억 달러를 뮤추얼 펀드에 투자했다.


뮤추얼 펀드의 급성장으로 19세기의 로스차일드나 20세기 초의 모건처럼, 펀드 매니저가 과연 21세기의 새로운 금융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펀드 매니저들은 모든 것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어항 속 세계에서 살고 있다. 뮤추얼 펀드처럼 대체로 표준화된 상품들은 서로 비교하기 쉽고 자산을 옮기기도 쉽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실적이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펀드 매니저의 인격이 아닌 수익률에 관심이 있고 보통 누가 자신의 돈을 관리하는지도 모른다. J. P. 모건이 갖고 있던 힘은 오늘날 뮤추얼 펀드 매니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과 뮤추얼 펀드의 수익률을 계속 추적하면서 순식간에 낮은 수익에서 높은 수익으로 돈을 옮겨가는 수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나누어갖고 있다. 성급하고 비정한 ‘작은 사람들’이 현대 금융의 진정한 주인인 것이다.


포괄적인 금융서비스 산업으로의 발전
지금 월스트리트를 휩쓸고 있는 뮤추얼 펀드 붐은 투자 은행과 상업 은행의 전체 구조를 무너트리려고 위협하는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1997년 2월 세련된 모건스탠리는 유난히도 촌스러운 딘위터와의 합병으로 부르기도 어려운 모건스탠리 딘위터 디스커버라는 거대한 조직을 탄생시킴으로써 재계를 놀라게 했다. 60년 이상 모건스탠리는 정부, 우량 기업들과 부호들을 상대로 엄격하게 도매 금융을 하면서 소액 투자자들을 하찮게 여기던 귀족적인 월스트리트의 대표적인 금융사였다. 반면 1920년대 이래 딘위터는 8,500여 개 중개인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메인스트리트의 소매 금융 세계에 속해 있었다. 공작부인이 하인과 눈이 맞아 달아난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어울리지 않는 결혼은 엄청난 문화 충돌을 예고하고 있었다.


새 회사는 즉각 메릴린치를 따돌리고 세계 최대의 증권사가 되었다. 도매 금융과 소매 금융에 양다리를 걸친, 완전히 통합된 세계 최초의 대형 증권사는 메릴린치였다. 하지만 모건스탠리와 딘위터의 합병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유는 메릴린치가 아래쪽의 소매 금융에서 시작해 사업을 확장했다면, 모건스탠리는 도매 금융의 높은 횃대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 연합은 1세기 이상 도매 금융과 소 매금융, 고도 금융과 하급 금융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월스트리트에서 막을 내렸다. 한때 철도회사들과 중공업을 지배했고, 외국 정부들과 거래했으며, 미국 본토에서 수많은 음모의 신화를 낳았던 신비로운 월스트리트의 금융 명가들이 기울고 있었다.


이제 다른 투자은행들이 증권사나 뮤추얼 펀드 그룹과 짝을 맺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모건스탠리와 딘위터의 합병은 아마 글래스-스티걸법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제휴는 투자 은행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글래스-스티걸법의 폐지에 대한 오랜 저항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상업 은행들은 이제 그들 자신의 뮤추얼 펀드를 판매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남아 있는 소매 유통 경로에 매달렸다. 대체로, 모건스탠리와 딘위터의 합병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금융업과 중개업 그리고 보험업이 하나의 포괄적인 금융서비스 산업으로 통합되는 신호였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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