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불안과 싸우지 말 것

저   자
페터 베르 (지은이), 장혜경 (옮긴이)
출판사
갈매나무
가   격
19800
출판일
202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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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불안에서 나오는 길은 일단 불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먼저 용기가 필요하지만, 발을 들여놓자마자 놀랍게도 해방감이 밀려드는 그런 길이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 온 세상 지식을 담고 다니며 SF에나 등장하던 로봇을 현실로 만들 만큼 엄청난 문명을 이룩했지만, 현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에 휩싸여 살아간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 환경 탓도 있겠으나, 그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평생 배우지 못하고 살아온 탓도 적지 않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하던 저자도 갑자기 공황을 맞닥뜨리고, 자신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했는지도 모른 채 쩔쩔매며 오랜 시간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심리학과 불교 공부, 명상 수행 덕분이었다.

불안을 향해 씩씩대며 주먹을 휘두른다면, 삶의 아름다움을 결코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발을 들여놓자마자 놀랍게도 해방감이 밀려드는” 그 길이 궁금하다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감정 해방 과정(Emotional Freedom Process)’에 동행해 보기를 권한다.

■ 저자 페터 베르
저자 페터 베르는 심리학자이자 명상 코치로, 첫 책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비롯해 후속작 ‘자신의 불안과 싸우지 말 것’까지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독일에서 마음챙김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을 돕고 있다. 

저자 스스로가 한때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번아웃과 불안장애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기에, 불면의 밤을 보내던 수많은 독자가 그의 책에서 위안과 해답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비결은 직접 개발하여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감정 해방 과정(Emotional Freedom Process)’이다. 이를 통해 불안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면, 단순히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니, 일상에서도 적극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 역자 장혜경
역자 장혜경은 연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자기만 옳다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들어가는 글 / 불안을 마주할 용기

1. 내가 불안한 줄 나도 몰랐다
건강엔 이상이 없다는데, 갑자기 공황이 왔다!
변화가 시작된 순간
불안을 끌어안는 법을 배우다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

2. 피할 길 없는 이 폭풍은 어디서 오는 걸까?
꽁꽁 숨은 두려움을 찾아내 보자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최고의 비결
아무리 둘러봐도 위험은 없다. 아닌가?
불안은 머릿속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코끼리는 왜 말뚝을 뽑고 도망가지 못할까?
한번 도망치면 계속 달아나게 된다
알 수도 없는 것들과 왜 싸우는가?
모든 것은 변하므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3. 불안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아차림 :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구명줄 질문을 던진다
호흡과 운동을 활용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일 때
죽을 것만 같은 공황이 닥쳤을 때
걱정거리를 앞두고 전전긍긍할 때

마음챙김 : 문명사회가 망각한 삶의 선물 되찾기
우리 마음은 왜 자꾸 콩밭으로 향할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챙김의 장점
평안에 이르고 무상을 깨닫기까지
지금, 여기로 향하는 세 갈래 길

4.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여정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은가?
불안은 삶이 보내는 초대장이다
당신의 생각은 당신이 아니다
전화위복, 동일시의 매듭을 풀자
걱정스러운 앞날을 받아들이는 법
감정 해방 과정(EFP)을 만나기까지
자기연민에서 자기애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삶을 온전히 마주하기

나가는 글 / 불안한 삶이 아름답다

 



도서요약

자신의 불안과 싸우지 말것


내가 불안한 줄 나도 몰랐다
불안을 끌어안는 법을 배우다
이 책을 통해 불안과 불안에서 벗어날 길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 당신에게도 이 책이 출발선이 될 수 있다면, 혹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해방과 구원의 길로 내딛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면 무척 좋을 것이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 당신의 넘치는 잠재력으로 향하는 길의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 길로 발을 내딛기만 해도 이미 대부분은 훨씬 상태가 좋아진다. 적극 나서서 안팎으로 자기 삶을 진실로 새롭게 꾸려가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상관없다. 또 자고로 그런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현실과 맞지 않는 특정 자아상을 머리에 담고서 계속 나를 불안으로 몰고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실을 합리적인 눈으로 꿰뚫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명상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그 자아상을 완전히 버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래서 좋은 점도 있었다. 내가 다시 바깥세상이 정한 목표와 나를 동일시하여 불안을 느끼고 그 목표의 방향으로 떠밀려 갈 때마다 몸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불안은 내가 지금 건강하지 못한 동기를 쫓고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도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삶은 늘 성장이다. 요구는 날로 늘어나지만,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활짝 펼치고 숨은 능력을 끌어내며 건강하지 못한 추진력을 버릴수록 삶은 더욱더 우리를 믿어주는 것 같다. 그사이 나는 많은 직원을 거느린 대표가 되었고 아빠가 되었으며, 매일 수천 명과 동행하며 그들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 해내고 있고 심지어 즐겁고 행복하다. 나 스스로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나를 자극하는 도전 과제들이 있고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일에서 예전만큼 나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완전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기의 문제다. 당신에게도 이 점은 꼭 알려주고 싶다. 불안이 행동의 동기가 되면, 즉 걱정에 떠밀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이 더 심해지며 심하면 공황 발작까지 올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의 동기가 기쁨이라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고, 자기 능력을 펼치고 싶으며, 세상에 이바지하고픈 욕망이라면,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피할 길 없는 이 폭풍은 어디서 오는 걸까?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최고의 비결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불쾌감은 우리 조상의 생존을 보장한 그 불안과 똑같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도 그 불안이 필요할까?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온갖 기술로 안전을 보장하며, 과거보다 훨씬 우호적인 환경을 선사한다. 도시에서 마주칠 제일 무서운 동물이라고 해 봤자 주인이 버릇없이 키운 강아지가 전부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종류의 불안은 여전히 존재할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도 위험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모퉁이를 돌아 우리에게로 돌진할 수 있다. 우리 역시 높은 곳에서 떨어질 수 있다. 같은 인간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는 인간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세상 많은 곳에는 인간을 해칠 수 있는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런 직접적인 위험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순간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빠르게, 본능적으로, 대부분 올바르게 반응한다. 껑충 뛰거나 몸을 피하거나 달아나거나 공격한다. 곰곰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생각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에야 나타난다. 아마 이런 생각들일 것이다. “미친놈 아냐? 왜 저렇게 빨리 달려?” 혹은 “휴, 큰일 날 뻔했네.” 위험이 닥치면 어떻게 할지, 우리 몸은 여전히 정확히 알고 있다.

아주 단순화하면, 인간의 행동은 두 개의 극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양극성 동기 체계’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위험, 고통 등 불쾌한 기분으로부터는 달아나려 하고, 기쁨과 행동 등 유쾌한 기분을 향해 달려가려 한다. 바로 이런 양극의 행동이 우리의 생존에 매우 유익하며, 이중 달아나는 쪽의 극은 불안으로 잘 작용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안이 우리의 삶과 생존에 매우 본질적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불안장애 환자가 이렇게나 많고, 그들이 불안으로 인해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사는데, 이건 다 어찌 된 일일까? 너무도 소중하다면서 지금은 거의 쓰지도 않는 것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당하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 질문으로 우리는 두 번째 형태의 불안에 당도한다. 이름하여 ‘심리적 불안’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불안의 99%는 이 유형의 불안이다. 이 불안은 외부의 직접적 위험이 아니라 머릿속 우리 생각이 만들어낸다. 우리는 오지도 않을 끔찍한 미래를 고민하고,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을 걱정한다. 우리의 이성이 미쳐 날뛰면서 감정과 몸을 마구 자기 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위험은 없다. 아닌가?
이 두 번째 형태의 불안은 더 교묘하다. 우리의 의식적 경험을 자주자주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을 불안이라고 느끼고, 나아가 그것의 정체를 합리적으로 꿰뚫어 보았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이 불안에서 금방 벗어날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이 불안이 직접적인 위험이 없는데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매머드는 없다. 한밤의 폭주족도, 그 무섭다는 호랑이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따뜻한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을 것이다. 사방은 고요하고, 아무리 둘러봐도 불안에 떨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내일 미팅에서 부장님한테 호되게 야단맞을까 불안하다. 여자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혹시 여자친구가 떠나지 않을까 불안하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뭔가 자꾸 삐걱거린다는 느낌이 드는 참이다. 혹은 저녁 뉴스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온갖 참담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다가올 모든 일이 무섭고 두렵다.

생각을 더 이어 나가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일은 운이 좋아서 미팅이 잘될 수도 있다. 부장님과 의견이 잘 조율되면 불안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다시 비슷한 상황이 되면 우리는 또 불안을 느낄 것이다. 뉴스를 보고 느끼는 불안처럼 불특정한 먼 미래가 불안의 원인일 때는 우리 시스템이 도무지 진정이 안 된다. 물론 어느 순간이 되면 더는 그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그 주제와 관련된 어떤 정보를 접하는 순간 다시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도망칠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으며 어떻게든 위험을 제거할 수도 없다.

상상과 현실의 틈에서 생겨나는 것들
이런 공포는 어떻게 생길까? 우리가 경험한 외부 현실이 우리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 뇌에선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우리 몸을 활성화하고, 우리 몸은 외부 현실을 다시 우리 생각에 맞게 바꾸려 노력한다.

가령 한 남자가 있다. 아내가 화를 내며 그에게 계속 이렇게 살 거면 헤어지겠다고 통보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마음에서 불안이 깨어난다. 그가 생각하는 인생에는 늘 아내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내의 이혼 통보를 위협으로 느끼므로 두뇌는 스트레스 경보를 보낸다. 물론 그는 갑자기 자동차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거나 매머드가 바로 옆에서 뛰어다닐 때 느낄 법한 불안을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분노나 슬픔, 절망감에 휩싸일 수 있다. 하지만 혼자되는 것이 두렵고, 아내와의 관계나 아내가 곁에 있는 삶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면 그의 마음으로 불안이 밀려들 것이다. 생각과 현실에 틈이 생긴 것이다.

아내가 이별을 통보한 순간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동시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고, 이제 곧 출근할 것이며 밤에는 잠을 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완전 뒤죽박죽이다. 아내의 입에서 그가 원치 않는 계획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불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현실이 우리의 바람과 일치하지 않는다. 상상과 현실 사이에 틈이 생긴다. 바람과 상상은 전두엽의 몫이다. 전두엽은 이마 뒤편에 있는 부위로, 진화에서 가장 늦게 발달한 곳이다. 이성적 사고와 의지도 그곳에 있으므로, 누가 봐도 생긴 지 비교적 얼마 안 된 두뇌 부위다. 그 아래에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변연계가 있는데, 그 안에 편도체가 있다. 변연계는 감정을 처리한다. 당연히 불안의 처리도 이 부위의 몫이다. 뇌는 이 부위를 전두엽보다 더 아낀다. 특히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전두엽의 의식적 사고보다 이 부위의 말에 더 많이 ‘귀 기울인다’. 아무래도 이 부위가 나이가 많다 보니 생존에 유익한 능력을 더 많이 입증해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 부위는 반응도 훨씬 빠르다. 앞에서 우리가 신이 되어보았던 기억이 나는가? 우리 조상들이 도망치는 게 나을까 아닐까, 고민을 먼저 했더라면 아마 살아남았을 우리 조상의 숫자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생각의 폭을 넓히면 찾아오는 변화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 삶에 유익하다고 평가하는 것과 실제 현실의 틈이 벌어질수록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 또 그 불안이 너무 심해지면 공황 발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물론 구분할 필요는 있다. 사실 살다 보면 현실이 바람과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늘 무언가는 바람과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마다 불안이 밀려오지는 않는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해야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잘 알고, 그에 필요한 에너지를 배출한다. 설사 잠깐 불안이 밀려들더라도 행동하여 바꿀 수 있다. 불안이 준비한 에너지를 이용해 외부 세계를 최대한 우리 생각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현실과 바람의 틈이 줄어들고, 그와 함께 불안도 사라진다. 싸움이 났다면 대화를 시도하고, 고장이 났다면 고쳐보면 된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면 차를 정비소에 맡길 수 있다. 번아웃이 온다 싶으면 휴가를 신청하고, 자조 그룹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명상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을 우리 바람과 닮아가게 만들 방법은 실로 수없이 많다.

반면 어떤 지점에서 외부 현실을 우리 바람에 맞추지 못하면 계속 불안에 붙들리게 된다. 아내가 떠나려 하거나 실제로 떠난다면, 앞의 그 남성은 오랜 시간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내가 당신에게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가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두 갈래 길이 있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 현실을 바꾸어 세상을 다시 우리 바람에 맞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절대 이 길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는다. 이 길 역시 삶에 꼭 필요하다. 사는 집이 마음에 안 들면 가구를 옮기거나 고치거나, 아예 이사하면 된다. 너무도 당연하다. 직장에서 의미를 못 찾겠고 심지어 스트레스까지 너무 심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면 직장을 옮기거나 아예 직업을 바꾸면 된다. 너무나 당연하다. 관계가 깨질 것 같지만 되살릴 방법이 보이거든, 그 방법을 실천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외부의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 번아웃이 올 지경이라면 자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통을 멈추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 내면에서 무언가를 바꾸어야 할 때다. 상황은 여전하나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이다. 상황은 여전히 불안을 일으킬 수 있지만, 우리가 다르게 대처하여 불안을 멈춰 세울 수 있다. 또 지금 당장은 불안이나 위기가 없다 해도 규칙적으로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기본 감정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다.

솔직해져 보자. 이 세상에는 우리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이 수없이 많다. 붓다께서도 생로병사를 항상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생로병사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원리가 뒤집힌다. 받아들이고 나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현실의 폭이 넓어진다. 관계는 끝날 수 있으며 누구나 버림받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더는 이 부분이 우리에게 큰 불안을 주지 못한다. 아내가, 남편이 이별을 통보해도 속수무책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어쩌면 슬프고 화나고 반발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관계를 되돌리려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헤어질 것인지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고, 우리의 상상 세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많은 것을 허용할 것이므로 당연히 불안도 점점 줄 것이다.


불안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구명줄 질문을 던진다
불안은 감정이자 몸의 프로그램이다. 당신은 완벽히 그 프로그램에 맞추어져 있다. 불안은 당신에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으며, 해칠 수도 없다. 불안은 감정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몸 안에서 움직이는 에너지다. 당신이 얼른 방어하거나 달아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 그것이 불안의 존재 이유다. 불안은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지키려 한다.

그러니 불안이나 공황이 찾아올 때는 이 질문을 던져보자. 뒤엉킨 생각과 감정, 감각의 매듭을 싹둑 잘라버릴 칼과 같은 질문, 호들갑과 야단법석을 단숨에 평정할 질문! 드라마를 박살 낼 질문!

지금 위험한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발표하러 가는 길인데? 중요한 미팅을 하러 왔는데? 지금 위험한가?

아마 99%의 대답이 같을 것이다. 지금은 위험하지 않다. 여기서 ‘지금’이 중요하다. 이 질문으로 당신은 자신이 만든 드라마에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뇌는 당신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릴 것이고, 서서히 불안의 에너지가 당신의 몸을 떠날 것이다.

어떤 때는 이 방법이 잘 통할 테지만, 또 어떤 때는 영 신통찮을 것이다. 그래도 질문을 던져보자. 항상 다시 도전해 보자. 다만 대답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형식적으로 질문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면 “예”라는 대답이 튀어나오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굳이 누구의 지시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일 때
다들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초롱초롱한 정신으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보니 근심 걱정이 밀려온다. 앞에서 내가 한 말이 기억나는가? 우리 뇌는 금세 재앙의 시나리오를 그린다.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과 함께 몸도 긴장과 불안에 휩싸인다. 머릿속을 떠도는 끔찍한 시나리오에 몸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불안은 거의 밤에 찾아온다. 새벽 두 시에서 다섯 시 사이가 제일 흔하고, 아예 잠이 들지도 못했다면 그보다 더 일찍부터도 시작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특히 새벽녘의 세로토닌 수치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행복 호르몬의 일종인 세로토닌은 해가 떠야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그전에는 기분이 매우 저조할 수 있다. 세로토닌이 너무 적으면 기분이 안 좋아지고, 이성도 부정적인 결론으로 빠져들기 쉽다.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결국 기분이 더 악화된다. 생각과 기분의 악순환이 본격 가동되면서 불안도 찾아온다. 맡은 일을 해내지 못할까 불안하고,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큰 위기가 정말로 일어날지 걱정되며, 식구들의 건강이 염려된다. 다들 너무 잘 알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과 불안은 깊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잠은 영영 작별을 고한다.

이렇게 해보자. 일단 지금은 미래를 걱정할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일어나서 조금 움직여 보자. 차를 한잔 타서 마시거나 소파에 누워도 좋다. 그렇게만 해도 달라진다. 머리가 계획을 세우고 할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종이와 연필, 혹은 태블릿을 꺼내서 제일 중요한 일부터 적어볼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다면 일단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을 정하고, 정말로 시급해서 내일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을 선별해 보자.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여정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은가?
안팎의 일들에 건강하게 반응하려면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신이 경험하는 그 무엇도 제거할 필요가 없다. 그 무엇과도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달아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마음을 열며 그것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불편한 신체 증상, 힘든 감정, 불안은 당신의 마음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어떻게 하면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당신을 정글에서 데리고 나가줄 나침반이다. 대답을 찾으려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는 모험가처럼 당신의 몸과 감정과 마음을 탐구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락거리와 진통제가 넘쳐나는 이유는 그만큼 눈 가리고 싶은 고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진통제를 털어 넣고 소셜 미디어에 푹 빠지는 쪽이 쉽고 편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 정글에서 나갈 수 없다.

변화의 중심에는 자기 책임이 있다. 자기 삶의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여정의 출발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누군가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뇌의 신경 연결을 다시 짜서 우리의 경험을 바꿀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바깥 상황,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낸 잘못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마음이 바깥 환경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남편이 고함을 질러서 마음이 안 좋아.” “부모님이 늘 야단만 쳤기 때문에 내가 확신이 없는 거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죄로 이렇게 사는 거지.” “부장님이 힘든 일은 다 나만 시키는 통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냐.” “운명은 어쩌면 이리도 가혹할까?”

하지만 바깥 환경이 곧바로 감정을 결정한다는 식의 연결은 잘못이다. 마음을 챙기지 못하면 바깥의 자극과 안의 경험 틈에서 우리 두뇌의 분별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미처 보지 못한다. 감정은 바깥 상황을 우리의 마음이 분류해야만 생긴다. 상사가 사무실을 흘낏 들여다보고는 휙 가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그 행동을 분별하지 않으면 아무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하지만 우리가 분별하지 않으면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그냥 알아차린다.

마음챙김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계속 남 탓을 하며 피해자인 척 책임을 떠넘기면 뇌는 치유 경험의 기회를 놓치므로 신경 연결을 다시 짤 수 없다. 하지만 책임을 떠안으면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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