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Inside WikiLeaks

저   자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역자: 배명자)
출판사
지식갤러리
가   격
13800
출판일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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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2010년 11월 28일미국 국무부의 외교전문 25만여 건을 공개하면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위키리크스. 위키리크스는 지난 7월에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으며, 4월에는 미군 아파치 헬기가 외국인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전 세계를경악하게 만들었다.

초창기부터 위키리크스 프로젝트에참여하며 어산지 곁에서 2인자로 활약한 저자가 위키리크스의 내부 비밀과 실체를 최초로 밝혀낸 책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위키리크스에 대해 알려진것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과 일화들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줄리언 어산지와 ‘최후의 심판’파일 등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문서들의 실체를 비롯해 비밀문서의 입수 및 폭로 과정, 폭로하는 문서의 선정 및 사실 확인 과정, 제보자의 신변보장 방법 등이 실제 있었던 일화와 함께 소개돼 있다. 더불어 기술적인 부분을 포함한 사이트 운영방식 및 재정 상태, 조직 네트워크, 멤버들간의 소통문화는 물론 이 내부고발 조직이 추구하는 기본 원칙과 주요 활동 및 문제점까지 제시한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0년간 해온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3년만에 생산해낸위키리크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운영되고, 또 어떤 문건들을 더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 저자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위키리크스의초창기 멤버이자 대변인을 역임했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 곁에서 3년 가까이 2인자로 활약한 내부 핵심인물로, 어산지를 제외하고 위키리크스에관한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위키리크스가 추진한 내부고발 프로젝트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고 말할 정도로 헌신했으며,활동 당시에는 ‘다니엘 슈미트’라는 가명을 썼다. 

8살때 컴퓨터를 처음 접했으며, 학업을 마친 뒤부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하기 전까지 여러 다국적기업에서 주로 IT보안 전문가로근무했으며 가장 복잡한 프로젝트의 해결사로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정보의 자유와 인터넷의 투명성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2010년 9월 사이트 운영의 투명성 부족과 어산지로의권력집중화 등을 이유로 위키리크스를 떠났으며, 현재는 위키리크스보다 더 투명성 있는 웹 사이트, ‘오픈리크스’를 출범시키는 데 전념하고 있다.

아직 위키리크스에서 공개하지 않은 상당수의 비밀문서가 그의 손에 들어 있다.

■ 역자 배명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8년간 편집자로근무했다. 이후 대안교육에 관심을 갖고 독일로 유학을 갔으며,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독일에 거주하면서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테크놀로지의 종말』『바벨탑에 갇힌 세계화』『위험한 정신의 지도』『엑스페리먼트』『뜨거운 몰입』『살아있는동안 생각해야 할 19가지』 등이 있다.

■ 차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웹 사이트, 위키리크스
위키리크스 연혁 및 폭로 일지 
서문 
프롤로그 

1장 첫 만남 
2장 율리우스베어은행 
3장 사이언톨로지 
4장 언론의 생리를 터득하다 
5장줄리언과의 동거 
6장 위키리크스의 재정 
7장 인터넷 검열과의 전쟁 
8장 언론자유무역항 
9장 오프라인으로 가다
10장 아이슬란드를 위한 법 
11장 베를린으로 돌아오다 
12장 "부수적 살인" 비디오 
13장 브래들리 매닝의 체포
14장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록과 "최후의 심판" 파일 
15장 스웨덴 여성 성폭행 
16장 정직처분을 받다 
17장메일서버 차단 
18장 이라크 전쟁 기록 
19장 케이블게이트 
20장 오픈리크스 
맺는 말 
감사의 말 
부록

* 본 도서 내용은 저작권사와의 독점계약으로 (사)한국물가정보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도서요약

위키리크스


프롤로그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나와 줄리언 어산지를 단번에 하나로 묶어주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는 보스나 지위의 높낮이 따위는 없다. 동등한 권리로 자유롭게 거래되어야 마땅한 지식을 한 사람이 독점하거나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누리는 일도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프로젝트가 기반으로 하는 기본 아이디어였다. 우리가 얻기 위해 싸웠던 것. 우리가 함께 시작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했던 우리의 프로젝트.


지난 몇 년 사이에 위키리크스는 크게 성장했다. 내가 2007년 거의 호기심으로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자랐다. 이 프로젝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창백한 컴퓨터꾼들을 영리한 공인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가들, 기업가들 그리고 군대 우두머리들에게 두려움이 뭔지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위키리크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와 기쁨 때문이 아니라 다음날 벌어질 재앙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떤 제보자가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가 귓전을 맴돌고,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줄리언은 내게 새로운 공격을 해왔다. 가장 가깝게 지냈고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이.


줄리언은 미 외교문서에 관한 최신 폭로를 소개하면서, 그 문서가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과 밖으로 공개된 일 사이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에게는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권리가 있다고 적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바야흐로 위키리크스의 문 뒤를 볼 때다.



첫 만남

2007년 9월 나는 처음으로 위키리크스에 대해 들었다. 당시 나는 웹 사이트(Cryptome. org)에 정기적으로 들어가 자료도 읽고 채팅도 하곤 했는데, 그곳에서 한 친구가 위키리크스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왔다. Cryptome.org는 영국 비밀정보부 M16에서 1999년과 2005년에 활동했던 요원들의 이름을 폭로하면서 특히 유명해진 웹 사이트다. 이 웹 사이트는 비밀을 폭로하려는 사람들의 자료를 받아 공개하는 곳으로, 물론 제보자의 신원이 발각되는 위험은 절대 없다. 위키리크스의 아이디어도 여기에 기반을 두었다.


우습게도 많은 사람들이 위키리크스 뒤에 어떤 국제 비밀정보부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일종의 함정으로, 비밀을 함부로 떠벌리려는 사람들에게 컴퓨터 플랫폼을 제공한 후 실제로 비밀자료가 사이트에 올라오면 그 제보자를 폭로자로 고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위키리크스를 크게 믿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11월 위키리크스 웹 사이트(Wikileaks.org)에 관타나모의 문서, 즉 델타 기지의 표준작업 절차 문서가 게재되었다. 이 문서에는 미국이 쿠바수용소에서 인권을 유린했고 제네바협정을 위반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즉시 세 가지가 명확해졌다.


첫째, 위키리크스가 비밀정보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순전히 헛소문이다.

둘째, 위키리크스는 Cryptome보다 더 크게 될 잠재력이 있다.

셋째, 위키리크스는 좋은 것이다.


"위키리크스? 완전 좋은 거지!" 이 대답에 확신을 얻은 나는 위키리크스로 더욱 다가갔다.



율리우스베어은행

2008년 1월, 그러니까 내가 정식으로 위키리크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직접 관여한 첫 번째 폭로가 있었다. 한 제보자가 숫자, 계산식, 그래프, 작업흐름도 그리고 계약서 한 무더기를 우리의 디지털 우편함에 올려놓았다.


수백 쪽에 달하는 자료에는 내부 교환서신, 메모, 그리고 스위스 최대 사설은행인 율리우스 베어 은행의 회계장부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자료에는 율리우스 베어 은행이 어떤 방식으로 고객의 수백만 재산을 세금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구체적인 사례들도 거론되었다. 거래 금액도 얼추 잡아 고객 한 명당 5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사이였다. 상위 10여 명의 탈세금액만으로도 사회복지 프로젝트 수십 개를 거뜬히 지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배경조사를 마치고 자료를 소개하는 간단한 글을 작성했다. 그런 다음 자료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사이트에 올렸다. 각 언론사에도 이 소식을 전했다. 나와 줄리언은 긴장 속에서 반응을 기다렸다. 2008년 1월 14일 월요일이었다. 보통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누가 사이트에 다녀갔고 어떤 버튼을 클릭했는지 정확히 알려고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이를 기술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키리크스의 익명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벌써 그 자료를 읽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료가 공개된 후 수많은 메일들이 쏟아졌다. 미국의 언론단체들과 시민운동단체들이 사이트를 방문했다. 회사의 부정을 폭로하고 싶어도 내부기밀유지계약과 보안유지법 때문에 폭로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활발히 토론되었다.


이후 전 세계에 분노의 폭풍이 몰아쳤다. 여러 국가의 기자들이 인터뷰를 원했다. 몰려드는 메일에 답을 보내는 데만도 여러 날이 필요했다. 수많은 신문과 방송들이 이 사건을 보도했다. 기자들은 영리하게도 위키리크스로 링크해주는 웹 사이트 200개를 추가로 알렸다. 「뉴욕타임스」가 특히 이 시간을 크게 다루었고 기사에 우리 IP 주소도 실었다. CBS 뉴스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적혔다. "언론의 자유에는 번호가 있다. 88.30.13.160"


이것은 위키리크스의 IP 주소였다. 우리는 정말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2008년 초 며칠 만에 아주 유명해졌다. 율리우스 베어의 소송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빨리 유명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위키리크스의 누구누구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면 기꺼이 이메일주소를 알려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몇몇 이름은 그 실체를 모른다.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줄리언 어산지의 또 다른 이름인지. 가령 제이 림은 법률 담당자다. 제이 림? 이름만 보면 중국사람 같다. 중국 반정부단체 회원으로 위키리크스 설립에 참여했다는 주장도 듣긴 했는데, 아무튼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서버 하나로 위키리크스가 운영되던 기간도 꽤나 길었다. 그러나 외부에는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우리의 인프라구조는 탄탄하게 잘 구성된 것처럼 비쳐야 했다. 만약 이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 외부 사람들은 적들의 공격이나 검열을 의심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계가 워낙 고물이라 그런 것이다. 아니면 전문성 부족이거나 가끔은 게으름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비밀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공개했다. 우파든 좌파든 다정한 사람이든 쌀쌀맞은 사람이든 모두 공개했다. 결코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메일도 포함되었고 무관한 제3자의 인생도 연루되었다. 편파적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투명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고수했다. 특히 줄리언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공개했다. 투명성 못지않게 오랫동안 중요하게 지켰던 규칙이 하나 더 있었다. 올라온 순서대로 공개하기. 우리는 2009년 말까지 이 규칙을 잘 지켰다.



줄리언과의 동거

2008년 12월 말 줄리언은 두 달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냈다. 그는 정해진 거처 없이 그렇게 늘 누군가의 집에 스며들었다. 짐은 배낭 하나가 전부인데, 그 안에 노트북 두 대와 핸드폰 여러 개 그리고 핸드폰 케이블선도 여럿 들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 제대로 찾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줄리언은 편집증이 있었다. 누군가 우리 집을 감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집에 같이 사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같이 귀가하면 안 된다고 우겼다. 나는 사실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같이 귀가를 안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누군가 우리 집을 감시한다면 당연히 우리가 함께 있는 걸 봤을 텐데. 그것도 집 안에! 아무튼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각자 따로따로 와야 했다.


같이 지낸 지 두 달쯤 지나자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났고 두 달을 함께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독특함에 나름 익숙해지기도 했다. 줄리언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여겼다. 줄리언의 어린 시절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주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을 텐데. 그래도 나는 열정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으며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친구로 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다. 어느 순간 나도 똑같이 따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부분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졌다. 내 생각에,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특이점을 갖고 있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해커 세상만 봐도 벌써 이상한 사람 천지다. 가벼운 자폐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나는 다른 사람의 별난 행동에 평균 이상으로 관대하다. 아마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줄리언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이렇게 놀라운 성공을 하지 않았다면, 돈과 관심 그리고 국제적 압력이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친구로 지내지 않을까?



위키리크스의 재정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뤘던 몇몇 성공적인 폭로 후에 기부금도 급격히 늘어났다. 2008년에 벌써 우리에게는 페이팔 계좌가 세 개나 있었고, 이 계좌로 기부금을 받았다. 율리우스 베어 폭로 얼마 후인 2008년 3월 1이에 페이팔 계좌로 1900유로가 들어왔고, 3월 3일에는 벌써 3700유로, 3월 11일에는 5000유로가 모였다. 그 후 계좌 두 개는 문제가 생겨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2009년 6월 당시 유일하게 하나 남은 페이팔 계좌도 갑자기 차단되었다. 돈을 넣을 수는 있었지만 꺼낼 수가 없었다. 페이팔에서는 이것을 제한방식이라 불렀다. 여러 달을 모르고 있다가 페이팔의 출금 차단에 관한 뉴스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그 계좌에 눈을 돌렸다.


"놀라지 마. 그 계좌에 자그마치 3만5000달러가 들어 있다고!" 2009년 8월 나는 줄리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돈을 반드시 구해내고 싶었다. 줄리언은 귀찮은 듯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를 도와준 사람은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는 내가 아는 한 여기자였다. 9월 셋째 주에 그녀는 페이팔의 직통서비스로 전화를 해서 「뉴욕타임스」가 후원하는 프로젝트 계좌가 왜 차단되었는지 물었다. 짜잔! 바로 계좌가 열렸다. 우리는 돈을 뺄 수 있었다.


진짜 싸움은 그 다음부터였다. 갑자기 돈이 생겼다. 그리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줄리언과 나의 생각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하드웨어를 구입하고 싶었다. 가장 시급한 우리의 인프라구조부터 개선하고 싶었다. 줄리언은 다른 계획이 있었다. 회사를 세워서 앞으로 있을 외부로부터의 간섭에서 현금을 효율적으로 보호하자고 했다.


줄리언은 어떤 판타지 속을 돌아다니든지 기본 바탕이 늘 같았다. 난공불락의 강력한 조직, 범접할 수 없는 후광과 기업으로 이루어진 국제적 네트워크, 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전 세계의 재정과 기업들을 주무르는 꿈, 누구에게도 저지당하지 않는 꿈. 그러나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 당장 필요했던 것은 아주 단순하고 실제적인 것들이었다.


위키리크스도 언젠가는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내 확고한 생각이었다. 누구도 더는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고 있는 한결같은 문제도 거기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없었다. 위키리크스 활동 이외에 따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브래들리 매닝의 체포

2010년 5월 미군 정보분석가 브래들리 매닝이 체포되었다. 채팅에서 어떤 사람이 전직 해커인 아드리안 라모에게 자기가 군사 기밀자료를 위키리크스에 보냈다고 말했는데, 미군 당국은 그 어떤 사람이 바로 브래들리 매닝이라고 지목했다. 게다가 라모는 미군 당국에, 이 사람이 소위 미군서버에서 꺼냈다는 자료에는 우리가 폭로했던 부수적 살인 비디오와 미 국무부 외교문서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라크에 주둔했던 매닝은 현재 미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공화당 의원 마이크 로저스는 매닝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소 52년형을 요구했다. 미군이 매닝을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 곧 명확해졌다. 위키리크스에 자료를 올리기 전에 매닝을 생각하라. 그에게 남은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매닝의 체포 소식을 접하고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를 돕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변호사일 수도 있다. 혹은 사람들에게 그의 선행을 널리 알리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우리는 제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은 우리의 보안원칙 중 하나였다. 우리는 제보자에게 단순한 동기만 물었다. "왜 자료를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폭로 동기를 물었던 까닭은 사람들이 우리의 플랫폼을 개인적인 앙갚음의 장으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자료를 폭로하는 동기는 항상 극히 개인적이다. 회사에 실망한 직원, 경쟁 패배자 혹은 순수한 도덕적 동기 등 그 스펙트럼은 넓었다. 우리는 제보자들이 자료를 올리면서 남기는 글에 자신이 드러날 만한 내용을 남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어떤 경우든 제보자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우리가 나중에도 계속 이 원칙을 잘 지켰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보자들을 우리 힘으로 보호할 수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위키리크스가 안고 있는 사회적 결점을 감지했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다. 위키리크스에서는 공로인정과 위험부담이 가장 불공평하게 배분되었다. 우리가 비교적 안전하게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배를 불리는 동안 정작 명성을 얻어야 하는 사람이자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폭로를 결심한 우리의 제보자들은 배를 곯았다. 놀라운 자료들을 몰래 복사하여 올리는 제보자들의 시민적 용기와 그들의 소중한 자료가 없었다면 우리는 대중에게 그런 긴장 넘치는 폭로를 할 수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위키리크스의 익명 메커니즘은 전통적인 언론과 비교할 때 매우 큰 장점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자들은 제보자를 끝까지 보호할 수 없다. 조사기관의 강압이나 법률적 이유로 제보자의 이름을 대야 한다. 그러나 위키리크스는 완벽한 익명원칙으로 기술과 법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어떤 자료가 너무 위험하다면 공개하지 않아도 될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수없이 토론했다. 매닝이 체포된 후부터 물음은 이렇게 바뀌었다. 자료가 제보자에게 너무 위험하다면 더는 공개하지 말아야 할까? 이 물음은 기본적으로 위키리크스의 모든 폭로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제보자가 3일 후에 연락을 해서 자료를 다시 내려달라고 요청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보자가 마음을 바꿨으니 그 청을 들어줘야 할까?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우리의 원칙은, 제보자를 아무리 압박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리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는 공개할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케이블게이트

나는 외교문서의 공개가 중요하고 또 옳았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안전을 위해 나는 아주 작은 틈이라도 발견되면 댐의 붕괴를 막은 네덜란드의 소년처럼 언제든 나를 던질 것이다. 외교문서와 비교적 관련이 없는 몇몇 언론들이 외교문서를 보도가치가 없는 주제로 평가할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도대체 뭐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중요하다고 여길까? 정말 축구경기 결과나 유명인 가십거리에 더 열광할까?


나는 한 시민으로써, 개인적으로 독일 자민당(FDP) 당수 비서실장 헬무트 메츠너가 총선 후 연정 협상과정을 미국 대사관에 은밀히 전달한 일에 관심이 많다. 이에 관해 나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시시껄렁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이제 사람들은 거짓말, 배반, 속임수, 뇌물을 운운하며 다시는 정치에 신경 쓰지 않을 좋은 핑계를 얻었다. 혹은 저녁 뉴스를 꺼버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어딜 가나 전쟁이고 사람들은 서로 속고 속이지. 더러운 세상!"


전 세계 보수파들은 말한다. 비밀은 비밀로 남는 것이 좋다고. 이것은 또한 독일 외교 정책의 오래된 불미스런 전통이다. 비밀유지를 보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선으로 강조함으로써 개방 및 대화 노력을 거부한다. 하지만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갈 만한 주장을 듣지 못했다. 국민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은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 정치의 복잡한 관계와 문제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면, 독일 군대가 세계 어느 전쟁터로 파견되는지 알리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가부장적이고 엘리트적인 헛소리다. 그래서 나는 투명성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한 지식을 나누기 위해 싸우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물론 외교문서 폭로에도 몇몇 문제가 있다. 하나는 독점권을 누리는 언론파트너가 있다는 점이다. 비록 정치학자 헤르프리트 뮌클러가 「슈피겔」에 쓴 외교문서 폭로 반대 글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나도 같은 의견이다.


"비밀이 항상 특정 권력의 손에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최신 폭로 전략으로 인해 비밀이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손으로 이미 넘어가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그냥 비밀의 보관자만 바뀐 건가?"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보관하던 비밀을 이제 다섯 개 거대 언론사와 줄리언 어산지가 보관한다.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자료를 고른다. 최근 폭로들은 위키리크스의 기본 아이디어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것도 아주 멀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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