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저   자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출판사
이매진
가   격
10000
출판일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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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책 소개
주민들의 공공 미술에서예술가가 된 철공 장인까지, 문래동 사람들 이야기!

문래동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공업 지역으로 발달한 곳이다. 1980~1990년대 개발 정책에 따라 그 모습이 많이 변화했지만,공장이 빠져나가고 아파트 단지와 주상 복합 오피스텔이 들어선 ‘황금 상권’ 곁에도 아직 과거의 철재상가는 남아있다. 이곳에 예술가들이 이주해오기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정부의 산업 시설 이전 정책 때문에 생겨난 철재상가 단지의 빈 공간에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고 있던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 마을’로 거듭난 문래동, 이곳의 새로운 주민인 예술가들은 고철음 속에 서서히 녹아들어가며새로운 풍경과 소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오래된산업과 새로운 예술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동네, 문래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사람들이 동네의 구석구석을 담아낸 책이다.예술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 도시와 만나 새로운 생동감을 얻는 예술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들려준다.

■ 저자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2007년부터 문래동에서 활동하던 예술가, 도시사회학 연구자, 미학 연구자, 예술행정 연구자, 문화예술기획자 등이 자신들의 거주지이자 활동 공간인 ‘문래동’을 연구하면서 발족했다. 현대 도시와 예술의 문제를 사회 실천적 지평에서 연구하는 집단인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는 주로 사회 문화 생태학적 관점에서 현장과 지역에 밀착해 연구한다. 『도시 재생의 대안적 미래 문래예술공단연구』 등문래창작촌에 관해 3편의 연구서를 발간했으며, 서울의 빈 공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문래동, 예술가와 만나다, 예술가,문래동과 만나다

1장 철공소로 간 예술가들― 공업단지에서 문래창작촌까지 
문래동,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 
개발의 풍경들 
예술가들, 스며들다

2장 문래동 이야기
문래동을 개방합니다, 한시적으로 ― 오픈스튜디오 
예술가들의 조금 특별한 반상회 ― 문래예술공단 
아트한복덕방 
지역 어린이와 만나다 ― 개나리 봇짐 
거리극, 지역의 경계를 넘다 ― 경계 없는 예술축제 
문래창작촌의 공공 미술과시각예술네트워크 
문래동 물물 장터에서 만나요 ― 썬데이 문래 
문래동 사용하기? ― 문래동_사용하기 워크숍 
공정무역커피하우스 골다방 
부엌이야, 술집이야? ― 자율부엌, 동네부엌 이야기 
이것은 옥상이 아니다. 이것은 미술관이 아니다 ― 옥상미술관프로젝트 
미대생들, 새로운 공부 공간을 만나다 
동네 영화관, <주말의 독립명화&& 
여하간 이것저것 하는 공간 ―project space LAB39 
문래동의 거리 아지트, 신흥상회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 공용 공간 이야기
문래동 쓰레기장, 화단이 되다 
함께 쓰는 침대 ― 자율적 레지던시 프로그램 LAB39R
열린 공간에서 뿌리는 예술의 씨앗 ―비영리 전시 공간 솜씨 
지역에서 실천하자 ―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문래창작촌의 이복동생 문래예술공장 
밥상 나르는 사람들 ―문래동의 식당 아줌마들 
문래동과 만난 여러 나라 친구들 
친절한 덕진 씨 
문래동과 만났어요 ― 문래동에 놀러오는 사람들
산으로 간 사람들 ― 문래골목산악회 
문래동을 연구하는 사람들 

3장 문래동, 새로운 예술 활동의 발신지 




도서요약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철공소로 간 예술가들 ― 공업단지에서 문래창작촌까지

예술가들, 스며들다

문래동 철재상가 단지에 2000년 초반부터 예술인들이 창작실을 임대하기 시작했다. 산업 구조의 재편과 도심 산업 시설의 수도권 이전 정책으로 철재상가 단지 안에 빈 공간이 생기고 장기간 방치되면서,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고 있던 예술가들이 임대 창작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 정착한 예술가들은 지인의 소개를 받아 둥지를 튼 뒤 개인 작업에만 몰두했을 뿐 이렇다 할 구체적인 대외 활동은 없었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경계 없는 예술축제와 물레아트페스티벌 등을 통해 문래동이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1층 철재상가를 제외한 2,3층에 빈 공간이 드물 정도로 창작실이 늘어났다. 그 결과 약 80여 개의 창작실, 소공연장, 연습실, 전시 공간이 몰려 있고, 활동하는 예술가 숫자도 200여 명에 이르게 됐다. 회화, 조각, 디자인, 일러스트, 사진 등 시각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댄스, 마임, 거리 연극, 상황극, 퍼포먼스, 전통 악기, 굿, 풍물, 비평, 건축, 도시사회학 연구자, 문화 활동가 등 분야도 다양하다.


문래창작촌의 형성과 빠른 성장의 배경에는 서울 시내의 높은 임대료, 홍대와 대학로 지역의 상업화와 예술가들의 퇴출, 전통 공업 지역의 쇠퇴와 공동화 현상, 삶의 활동과 예술 창조 활동의 일상적 접촉, 장인 정신과 예술 창조 정신의 만남 등이 놓여 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문래동 지역에 많은 예술가들이 빠른 속도로 모이게 된 것이다.



문래동 이야기

문래창작촌의 공공 미술과 시각예술네트워크

문래동에서 공공 미술이 시작된 때는 2008년 봄이다. 한국에서 많은 공공 미술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진행된 많은 공공 미술은 공공 기관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공공의 자금을 들여 진행된 경우가 많다. 그런 반면 문래동의 공공 미술은 좀 다른 취지에서 출발했다.


문래동에 모이는 예술가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주변의 관심도 모으게 되면서 예술가들은 점차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게 됐다. 예술가들은 처음에는 작업실에 박혀 개인 창작에만 몰두했지만 점차 오래된 철공소 단지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이제는 "지역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우선 작업실 주변 철공소의 철문 간판에 벽화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벽화의 내용은 예술가의 아이디어에 평소 친분이 있던 철공소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문래동에서 처음 그려진 벽화는 미술가 김윤환이 그린 새한철강의 철문 벽화다. 철강이라는 거창한 명칭 때문에 아주 큰 공장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40평 정도 되는 작고 소박한 업체다. 벽화의 내용은 1인 사장이자 노동자인 철공소 사장의 하루 일과를 담았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철재를 정리하고, 거래 업체의 주문량만큼 철재를 자르고, 자른 철재는 다시 크레인을 이용해 트럭에 옮겨 심고, 보내는 내용이다. 덤으로 사장의 낡은 승용차에도 그림을 그렸다. 벽화를 제작하는 동안 사장이 내어놓은 두어 차례의 조촐한 막걸리 파티가 있었고, 예술가들과 철공소 노동자들은 그만큼 친숙해졌다. 그 벽화를 그리는 데 들어간 돈이라고 해봤자 그저 약간의 물감 값과 막걸리 값이 전부지만, 예술가의 마음과 철공소 사장의 마음이 눈에 안 보이는 든든한 밑받침이 돼주었다.

새한철강 벽화를 시작으로 문래동에 하나둘씩 벽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벽화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철공소 종사자들에게 전달됐고, 지역을 넘어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마침 문래창작촌에 거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던 영등포구청에서도 예술가들의 움직임에 부응해 약간의 예산을 지원하면서 문래동의 벽화 그리기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더구나 그해 7월에 열린 문래동 작업실들의 오픈스튜디오 페스티벌에 즈음해 벽화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는 계기도 됐다.


2009년에는 더 많은 예술가들이 공공 미술에 참여하게 됐는데, 외부적으로 눈에 띄는 벽화나 설치 작품보다는 문래동 커뮤니티에 필요하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서 예술적 색채를 입혀 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공용 자전거다. 또한 속속 늘어나는 문래창작톤의 작업실들을 지도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개인 작업실에 앉아 있어도 이 지도만 있으면 누가 어디서 무슨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철공소 종사자들도 지도에 표시된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보면서 동네에 부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한 해 한 해 거듭될수록 문래동에 관한 예술가들의 고민과 실천은 늘어갔고, 그런 만큼 공공 미술의 형식도 다양해졌다. 정말 우리가 원하고, 우리 동네가 원하는 공공이 무엇인지, 또한 미술이 그것에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실험하게 된 것이다.


관이 주도하는 공공 미술은 공공 자금이 투입되면 외부의 예술가들이 급조돼 해당 지역에서 작업이나 프로그램을 수행한 뒤 철수하면서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단지 벽화나 조형물만 남을 뿐 그 과정 속에서 생긴 소중한 커뮤니티는 대부분 소멸된다. 따라서 작품과 커뮤니티를 포함한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가진 공공 미술에는 이르지 못한다. 공공 미술의 목적이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제도 공간을 넘어 예술을 통해 삶과 현장의 연결을 회복하고 지역 공동체의 건강성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보면, 적어도 문래동의 공공 미술 운동은 그 본질에 좀더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래동 쓰레기장, 화단이 되다

문화는 소소한 활동과 의미에서 시작된다. 문래동은 예술이 창작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작고 사소한 것에서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몇몇 예술가들이 밥을 먹다가 술을 마시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프로그램이 되고 공간이 된다. 문래동은 그런 것을 증명하는 장소다.


문래동 구석구석에는 시간의 축적을 알 수 없는 쓰레기와 먼지들이 가득하다. 오랜 시간 방치된 건물과 공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하나의 섬이 되어버린 문래동 철재상가 단지는 도시의 근엄한 위생이 닿지 않는 동네였다. 그래도 후미진 구석에는 예상하지 못한 잡초들이 자라고 또 사라지며 생명을 지속한다. 문래동을 살짝 보면 무엇인가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다고 느끼기 쉽지만,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랄 만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것들에서도 미적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숨겨져 있는 미적인 것들에는 노동자와 예술가들의 손재주와 재능이 큰 몫을 한다. 철공소 노동자들은 일의 효율을 높이려고 좁은 공간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예술가들은 필요에 따라 공간 구석구석을 작업의 공간이자 생활의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방치된 옥상이 갤러리와 미술 실기의 장이 됐고, 거리는 공연장이 됐다.


어느 날, 차가운 철재상가 주변에 작은 화단이 생겼다. 늘 쓰레기가 쌓여 있던 곳이 화단으로 바뀐 것이다. 문래동에서 원예 작업을 하는 심수화 작가가 철공소 기술자들과 함께 만든 작은 화단이다.

문래동에는 벽화와 설치 작품 등 예술 작품들이 많은데 화단이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문래동에 화단이 조성된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철공소 노동자와 예술가가 함께 만든 화단이라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만드는 과정에서 예술가와 노동자의 소통이 시작되고, 이것을 기반으로 주변 예술가와 노동자 사이의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작은 관계의 시작은 작업실과 철공소 사이의 작은 협력의 상황과 사건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가의 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철공소 노동자에게 배우고, 철공소의 부족한 일손을 예술가가 지원한다. 한 동네에 이웃해 있지만 작업실 예술가와 철공소 노동자가 관계를 형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대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달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예술가와 노동자가 각자 지닌 재능과 시간을 나누고 격려하는 사소한 일에서 좋은 관계들이 형성되고 있다.


외부 사람들은 쓰레기장이 화단으로 바뀐 결과만 볼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현재의 문래동 그리고 문래동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이제 문래동의 다양한 사건과 장소성은 예술가와 노동자들이 어울려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다가, 또 함께 어떤 작업을 하다가 생겨날 것이다. 계속되는 문래동의 화단 시리즈를 기대해 보자.


문래동을 연구하는 사람들

문래동을 찾아오는 사람들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은 사진 동호회에서 온 사람들이다. 대개 위용을 뽐내는 크고 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무리지어 동네를 서성거린다. 또 다른 부류는 문래동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다. 9시경 무리를 지어 문래역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사무실(주로 에이스타워의 사무실)로 흩어진 다음, 6시가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 사람들의 출퇴근길에 철재상가는 없다. 에이스타워는 철재상가를 이웃하고 있지만, 마주하고 있는 면에는 높은 담이 있다. 철공소의 고립된 이미지를 상징이라도 하듯. 또 문래동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에 온 사람들이나 기자들이 있고, 최근에는 연구자들도 드나든다. 주로 문화연구, 건축, 인류학, 도시사회학 등을 전공하는 이 사람들은 문래동 이곳저곳을 다니며 문래동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문래동에 관한 연구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 주제와 시각이 다를 뿐이다. 1996년에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나온 학위 논문은 소규모 제조업 집적 지역, 즉 쇠 깎는 소리, 쇠 던지는 소리, 다양한 기계음이 풍경을 지배하는 문래동을 알려준다. 반면 2000년대 이후에 나온 논문들이 다루는 주제는 예술 문화 공간인 문래동, 예술창작촌의 장소 형성, 문화예술지원센터, 창작촌의 문화정치학 등이다. 이렇게 문래동을 다루는 연구의 주제가 달라지는 것은 문래동으로 검색한 기사 목록에서도 확인된다. 60~80년대 생긴 문래동 관련 기사는 길가에 쌓아놓은 물품을 철거하지 않아 생긴 문제나 밀린 월급을 요구하는 시위 등 공업 중심지 문래동을 잘 드러내는 것이 많았다. 9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좋은 투자처 안내 기사로 대세가 바뀐다. 이런 기사에서 문래동은 놓쳐서는 안 될 각광받는 공장 부지 아파트가 건설되는 지역이다. 실제로 문래동3가 LG빌리지(현 문래 자이)는 그때 서울에서 아파트 가격이 제일 많이 오른 곳이었다. 최근에는 문래예술공단, 문래창작촌, 문래예술공장 등에 관한 기사가 많다.


이렇게 문래동에 관한 글의 주제가 바뀌는 것은 무엇보다 문래동이라는 공간의 성격과 장소성이 변화했다는 점을 보여주며, 그렇게 달라진 주제가 현재 문래동을 이야기할 때 지배적 담론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제 누구도 문래동을 이야기할 때 고철 소리와 기계음만을 상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996년의 연구자가 문래동에 관해 쓰면서 예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의 연구자는 어떤 형태로든 이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문래동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문래동의 예술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건재한 소규모 제조업자나 철재상들에 관해서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또 다른 주체들을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앞으로 외부에서 들이닥칠 재개발 같은 중요한 사건들 앞에서 예술가와 철공소는 똑같은 지역민 또는 세입자일 뿐이다. 문래동에 관한 연구가, 문래동을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펼치는 다양한 예술 활동에 주목하는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에 관한 관심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 한 가지 문래동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제의 다양성이다. 예술 게토, 문화정치, 도시 공간의 생산, 문화적 다양성 등 여러 가지 시각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그만큼 문래동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이 풍부함은 크게 두 가지에서 기원한다. 하나는 공간의 특이성이다. 산업 단지에서 문화예술 단지로 바뀐 사례는 많이 보고되지만, 산업 활동과 예술 활동이 한 지역에서 공존하는 경우는 드물다. 철재상 철문을 캔버스로 한 벽화, 철공소를 작업실로 사용하는 작가, 예술가에게 알바비를 주는 철공소 등은 문래동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풍경이다.


두 번째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문래동의 변화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다. 문래동에 온 예술가들은 단지 모여 있다는 것을 넘어 모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상황은 문래동이라는 공간에 여러 상상들을 입혀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그 사람들은 다시 자신만의 문래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문래동과 만난 기획자, 강사, 공부방 등은 문래동을 자신의 기획을 실현할 장으로, 학생들의 작업 공간으로, 교육 프로그램의 무대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제 연구자들은 새로운 연구의 장으로 문래동을 바라본다. 문래동의 변화는 이렇게 이곳의 공간과 접속한 여러 사람들의 상상과 실천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3장 문래동, 새로운 예술 활동의 발신지

현대 도시는 다양한 삶의 양상들이 중층으로 모여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이 집적된 공간이다. 정치, 경제, 행정, 문화, 교육 등이 도시에 집중돼 있고, 자본주의적 소비의 삶이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규격화된 삶의 양식, 공간을 둘러싼 불평등의 문제, 파편화된 관계 등 부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도시 에너지의 긍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가려는 노력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유럽의 경우 60년대 이후 산업 구조가 재편되면서 도심의 공장이 외곽으로 이전한 뒤 방치된 곳이 많았다. 대안적 삶과 새로운 예술을 꿈꾸던 사람들이 이런 공간에 스쾃을 만들어 새로운 삶과 예술의 실험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의 빈 공간에 관한 이런 접근은 공간 소유를 통해 자본과 권력을 재생산하는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직접 행동을 통해 공간을 전용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시도다. 행정 당국은 반란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이런 사람들은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과 토론회 등을 조직하면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게 하고, 그 모순의 시발점에서 다시 생성의 에너지를 길어 올려 지역 사회를 활기차게 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예술의 역사 그 자체와 예술의 철학적 본성을 문제시하고,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현재적 삶을 재구성하는 존재다. 이것은 삶과 예술이 다른 층위에 있지 않다는 인식의 발로이며, 자신의 삶을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다. 이런 종류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곳을 우리는 예술창작촌이라고 부른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지역에 모여 있는 곳으로, 각기 다른 형태의 예술 작품을 생산하더라도 일상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곳이 창작촌이다. 창작촌이 기존의 예술 공간이라는 개념과 대별되는 지점은 창작실을 중심으로 예술의 생산지가 집적돼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예술 공간이 생산지이기보다는 발표, 즉 소통과 교류가 중심이라면 창작촌은 오픈 스튜디오나 지역 페스티벌 등을 통해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하고, 예술가들은 지역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 생산에 참여시킨다. 이때 지역 주민들은 단순한 참여자이기보다는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창의적 생산자로 변화하기도 한다. 어느 지역에 창작촌이 있다는 것, 그것도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작업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빡빡한 도시 생활에서 바람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


문래동은 영업 중인 철공 단지에 자발적으로 조성된 예술가들의 창작실 집적지이자 재개발에 직면하고 있다는 특이성이 있다. 이렇게 철공 단지와 공존하는 창작촌이라는 지역적 특성은 정부나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인위적이고 획일화된 도시 재생의 논리와 다른 도시 재생을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자율적 기획과 실험을 통한 예술적 파동이 도시의 자유로운 진화를 자극하고, 도시 개발이라는 화두를 자신의 작품이자 삶의 화두로 삼아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늘어나게 됐다.


또한 문래동은 개인 창작에만 그치지 않고 하나의 예술 마을로, 지역 공동체로 기인하고 있다. 이미 거리 축제나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문래동 예술가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주고 예술 활동에 참여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영등포구의 문화 기반 시설은 다른 자치구에 견줘 수도 모자라고 프로그램 실행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문래창작촌이 활성화될수록 지역의 문화 공간이자 문화적 자원으로 큰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적 공공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문래창작촌은 새로운 예술 아지트로 기능하고 있다. 특이한 공간과 장소성은 예술가들을 모이게 하고,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한다. 문래동에서 열리는 크거나 작은 예술 이벤트들은 대부분 국제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이나 옥상미술관 프로젝트, 비바! 아시알리제이션, LAB39R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국제 무대에 많이 진출한다. 경계 없는 예술센터나 극단 몸꼴의 경우 자체 네트워크와 초청을 통해 해외에서 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미술 작가의 경우에도 해외와 네트워크된 전시나 프로젝트에 초청되고 있다. 특별한 예술 행사가 있지 않아도,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해외 예술가들은 수시로 문래동에 들러서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으며, 예술과 지역사회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눈다. 그런 의미에서 문래동은 관계를 형성하고 확장하는 공간이자, 문래동 외부의 자원들이 접속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으로 실험되는 공간이다. 문래동은 예술과 예술가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계속 질문하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과 전략을 모색하는 실험의 장이 됐으며, 바로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예술 활동의 발신지로 기능하고 있다.


문래동의 활동은 문래동의 역사성과 장소성,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통섭의 현상, 세계적 보편성을 반영하면서도 독특한 지역성을 장점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문래동만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예술 활동으로 부를 수 있고, 그래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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