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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대한민국 대표 논객, 대통령을 논하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대표적인 정치분야 논객들이다.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현실 정치를 지켜보고 분석해온 분들의 진지하고 때론 유쾌한 대화를 통해 대통령史를 정리했고 현재의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미래를 조망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는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 과를 되짚으며 ‘과연 각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제를 얼마나 수행했는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현직 대통령과 조금 이르지만 2017년 대통령 선거의 후보군도 거론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평가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4년이나 임기가 남아있고 얼마든지 변화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과거의 대통령을 잘 공부해서 지금, 여기 이 땅의 정책을 결정하고 사람을 써야 한다. 그런 단초를 제공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책의 말미에는 이 세 명의 인터뷰를 통해 책의 의미와 진행과정상 느낀 점, 이상적 대통령상 등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담았다.
■ 저자
윤여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3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선친 윤석오(尹錫五) 선생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 당시 경무대 비서관을 지냈으니 2대에 걸쳐 권부에 근무한 드문 내력을 갖고 있다.
윤여준은 193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거쳐 단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기자를 지냈으며, 1977년 주일대사관 공보관으로 관계에 투신하였다. 이후 청와대 의전·공보·정무 비서관과 국정원장 특별보좌관, 대통령 공보수석 비서관을 지냈다. 1997년 환경부장관을 역임하였으며, 2000년에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여의도연구소장,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고 2014년 1월초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상돈
한국전쟁 중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한 후 미국 튤레인 대학과 마이애미 대학에서 공부했고, 국제환경법 논문으로 튤레인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이래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환경법’ ‘국제환경법’ ‘국제경제법’ 등을 가르쳤고, 2001년~2003년 동안 법대 학장을 지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환경, 국토, 물 관리, 원자력, 사법제도 등에 관한 사설과 칼럼 400여 편을 썼다. 2012년 대통령선거기간에는 새누리당 비대위원, 박근혜 후보 정치쇄신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미국의 헌법과 연방대법원』 『국제거래법』 『환경법(공저)』등의 전공 관련 책이 있고, 일반서적으로는 『조용한 혁명』 등 다수. 보수적 자유주의자로 불린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며, 정치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뭐라도 합시다』(2014) 『1인자를 만든 참모들』(2003, 2013) 등이 있다.
■ 차례
시작하며
1. 이승만 대통령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다 |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 불행이 시작되다
2.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그 선연한 빛과 그림자 | 유신, 전과 후 | 유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다
3.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크다
4.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의 가교/물통령 | 북방정책, 통일정책은 분명한 공 | 역사의 의미를 읽어라
5. 김영삼 대통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로 박수 받고 | 씻을 수 없는 과오, IMF
6. 김대중 대통령
26년만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 | 햇볕정책, IMF극복은 공 | 게이트로 날이 저물다
7. 노무현 대통령
이회창이 진 선거일 뿐? |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8. 이명박 대통령
건설사 CEO스러운 |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9. 박근혜 대통령
야당이라는 인식으로 당선? | 변했나, 원래 그랬나 | 변화는 가능한가
10. 미래를 말하자
개헌은 가능한가 | 대한민국 재구성이 필요하다! | 이 사람을 주목하라
11. 지금 선 이 자리
다시 이곳과 현재를 말하다 | 뭔가 변하고 있다 | 윤여준, 안철수의 새정추로
윤여준 장관 인터뷰
이상돈 교수 인터뷰
이철희 소장 인터뷰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
이승만 대통령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윤여준 마포장 시절만 해도 이 대통령은 친일파는 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고했었는데 이후 달라졌다고 해요. 선친은 당시 정부 인사를 관장하는 총무처의 차장이셨는데 주요 관직의 후보 인사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셨다는 거예요. 대표적인 친일 인사가 떡하니 적임자로 돼 있는 거죠. 선친이 경무대에 올라가 이 대통령에게 이러이러한 경력이 있다 말씀드리면 몰랐다며 즉시 취소시키는 일이 반복됐다고 해요. 그런 친일파를 천거하는 세력이 있었던 거죠. 그들은 이기붕을 통로로 삼아 프란체스카를 통해 인사 천거를 했다고 해요.
인사가 뒤집히는 일이 계속되니까 난리가 났대요. 심지어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 박사님 쉬셔야 된다면서 양 팔을 벌려 선친이 집무실에 못 들어가게 막아섰다고 해요. 프란체스카는 한국말을 전혀 못했으니까 영어로 자기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을 믿었고 식민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친일 인사를 고위직에 천거했겠지요. 이 대통령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그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라고 선친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부산 피란 중에 내무부 장관 인사를 하는데 선친이 이 대통령에게 "이 사람은 안 됩니다." 하니까 짜증을 확 내면서 "자네는 왜 내가 쓰는 사람마다 반대하는가?" 했대요. 그래서 "선생님, 이제 다시는 인사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나오셨대요. 선친이 늘 이 대통령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셨어요. 대통령 되시기 전 호칭을 계속 쓰셨던 거지요.
이상돈 식민지 시대에 일제의 때가 타지 않은 사람이 식자층 중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윤여준 물론입니다. 선천도 물론 그 점은 충분히 알고 계셨죠. 그러나 두드러지게 친일한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였지요. 이 대통령도 과거 마포장 시절에는 친일파를 등용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대요.
이철희 서독의 국부 콘라드 아데나워는 이승만과 처지가 비슷했습니다만 전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서방과 손잡는 정책을 폄으로써 경제기적을 만들어냈죠. 오래 집권하긴 했지만 독재는 하지 않았어요. 아데나워도 나치 부역자를 기용하긴 했습니다. 예컨대 한스 글로브케라는 사람은 나치 협력자인데 총리실장으로 발탁하는 등 최측근 참모로 활용했습니다.
건국의 시기에 역량 있는 사람들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일부 제한적 기용이 아니라 통째로, 그것도 납득할 만한 속죄 절차나 단절 없이 곧바로 쓴 것은 정말 문제였죠. 그 결과 독립운동 한 임시정부 인사들을 건국 과정에서 전부 들러리로 세운 거 아닙니까?
윤여준 말해 뭐 하겠습니까? 임영신(여성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이름을 따 호를 승당이라 지을 정도로 최측근이었다) 파동, 이런 인사 사고들이 이어졌죠.
이상돈 경제 정책이란 것은 아예 없었고,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지요. 안보도 미국에만 의존하긴 마찬가지였어요.
윤여준 한미상호방위협정을 안보에 대한 혁혁한 공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요, 역사를 자기 시각에 따라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요즘 역사 논쟁을 보고 있으면 저같이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어이없어요. 균형 있는 시각으로 봐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을 왜곡하면 안 돼요. 요즘에는 너무 그게 심한 거 같습니다.
이철희 저는 이 대통령이 그나마 잘한 것으로 꼽는다면 군대를 동원해 민의를 힘으로 누르지 않고 하야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덕분에 피는 안 흘렸잖아요.
이상돈 하야(下野)도 본인이 하고 싶어 한 건가요? 하야하지 않으려면 군을 동원해야 했겠지요. 그때 군을 동원했으면 쿠데타가 났겠지요. 미국 정부가 막후에서 수습을 한 측면도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이철희 이제 전두환 평가로 들어갈까요?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은 평가할 게 과연 있을까요? 백 번 양보해도 우리 현대사에서 쿠데타는 한 번이면 족한 거지, 두 번은 용납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전두환 정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죠. 논란이 됐던 귀태는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여준 제가 모셔분 분이지 않습니까. 중반기에 합류하긴 했지만. 저는 늘 그랬어요. 동료 비서관들에게. 전 대통령은 10·26 총성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모른다. 작게 보면 유신 체제의 종말이고 크게 보면 오랫동안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의 종말이다. 이제 민주주의 체제로 옮겨가야 하는 이행기가 시작되었고 자신은 그 이행기를 준비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그런 역사의식이 없이 어설피 박정희 대통령 모델 흉내를 내려고 했어요. 철권통치 하려 들고.
박 대통령 때의 경제 개발 과정의 모순을 고치고 김재익(전두환 정권 당시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금융실명제, 물가 안정화 정책, 정보화 정책, OECD 가입, 수입 자유화 정책 등을 입안했다) 씨 같은 전문가를 둬서 경제를 안정시켰다는 걸 공로로 치죠. 전두환 대통령을 물가 안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3저 호황이라는 호기도 만났고. 88올림픽을 유치해 국제 사회에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였다는 것 등등이 공로겠지요.
저는 10·26의 의미를 전혀 못 읽었으며 여전히 권위주의로 박정희 대통령 식의 토치를 한 것이 잘못이라고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쨌든 자기 신념이나 철학이 있었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어느 날 별안간 준비 없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야말로 권력의 사유 의식이 생긴 거죠. 가산주의(家産主義)적 태도가 생긴 거예요. 가족, 측근들 사이에. 부패가 생기고 공공성이 파괴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이 씻을 수 없는 과오입니다.
이철희 말씀드렸듯이, 저는 5·16이야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이해하지만 12·12는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습니다. 장관님은 온건하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태어나면 안 될 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김대중이 전두환·노태우 없이 80년대에 대통령이 되었다면 더 잘 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의 이런 혼란도 훨씬 더 정리가 잘 되었을 거고요. 저는 그 시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매일 교문 앞에서 최루탄 마시며 싸운 기억밖에 나지 않으니까요.
윤여준 그렇긴 한데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로 급격히 전환하면 또 엄청난 혼란이 와요. 이행기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죠.
이철희 장관님 관점에서 보면 저는 차라리 김종필 씨가 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해요. 그랬다면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했겠죠. 5공은 유신 체제의 연장이라고 봐야 하는데, 전두환 때문에 그게 너무 오래 간 거예요.
이상돈 10·26을 미국 유학 첫 학기에 겪었어요. 저는 당시 10월 유신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독재가 앞으로 10년은 가겠구나 생각했어요. 스페인은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후 자연스럽게 민주화가 됐는데, 그것을 보고 우리도 스페인처럼 자연스럽게 민주 체제로 옮겨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10·26 이후 12·12를 보니까, 4·19 이후의 혼란이 연상되더군요. YS나 DJ로 정권이 넘어가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두환이 경제를 살렸다고 하지만 70년대에 기반을 잡은 것이 꽃을 피운 겁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한 게 뭐 있어요? 전두환이 자랑하는 물가 안정도 억지로 잡아놓은 것 아닙니까? 민주화 후에 노태우 대통령 들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잖아요.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했어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오셨을 때 전두환 부부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교황이라는 절대적 권위 옆에서 초라하게 서 있는 모습 말입니다. 그런 대통령을 우리가 가졌으니 평가를 할 게 뭐가 있나요?
총체적으로 볼 때 전두환 정권은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너무나 큰 정권이었어요. 주사파 만미 운동권도 전두환 때문에 생겨난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이철희 노무현 대통령이 됐을 때 처음엔 워낙 소수파 대통령이다 보니 의회에서 몇 석 없으니까 탄핵까지 몰렸죠. 탄핵의 역풍으로 152석을 만들어냈으면 잘 해야 했는데…. 4대 개혁입법은 민생 개혁이 아니에요. 그게 포인트예요. 아젠다를 잘못 잡은 거죠.
이상돈 그게 이념과잉이라 그래요. 이념전쟁을 촉발시킨 거예요.
윤여준 이념과잉에 아마추어리즘이 만든 거죠.
이철희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 좀 해결해놓고 그런 문제로 갔었어야죠.
이상돈 사실 당시 우리 경제는 좋았어요. 경제 위기 후 본격적으로 회복되는 단계였어요.
이철희 어쨌든 생에 집중해서 대통령이 달라지니 뭔가 다르구나. 서민의 삶의 질에 착목해서 열심히 일하는구나. 이런 걸 좀 보여준 다음에 바꾸고 싶은 거를 추진했었어야 하는데 반대로 갔어요. 열린우리당이 사실 여당 역할을 제대로 하기엔 실력이 좀 부족했죠. 초선만 108명이라 108번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구난방이었어요.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 분리라고 해서 당을 저만큼 밀쳐놓으니 열린우리당은 힘이 없었어요. 개혁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정작 그걸 추진할 여권은 힘을 분산시켜놓으니 결국 어렵게 기신기신 버티다 무너졌다고 저는 봅니다. 민주당 내의 갈등이 만만치 않았죠. 신당을 하니 마니 계속 지지고 볶다가 11월쯤에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니 그 혼란이 말도 못했죠.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필요한 소명은 다 했다고 봅니다. 구시대의 막내라는 측면에서 기성 체제를 해체·변화시키는 데, 지역주의를 약화시키고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시대적 과제를 완수했잖아요.
윤여준 기존의 질서를 많이 깼다는 점에서는 그렇죠. 본인의 캐릭터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참 특별해요.
이철희 저는 정치적으로 보면 열린우리당을 만든 게 패착이라고 봐요. 당을 깨는 건 좋은 해법이 아니죠. 정당이라는 게 잘 나갈 때 있고 못 나갈 때 있는 건데 못 나간다, 마음에 안 든다고 깨고 나가면 정당이 스스로 무력화될 수밖에 없어요. 어쨌거나 그 선의와 상관없이 현직 대통령이 정당을 만들면 급조된 포말 정당이 되기 쉬워요. 임기 끝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런 정당을 만들었다는 시도는 아무리 다른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잘못된 전략이죠. 민주당을 개편하는 쪽으로 가고, 거기에 얼마를 더하기 하는 방식으로 갔어야 해요.
그러다 보니 갈수록 힘들고, 거기다 열린우리당까지도 당정 분리라는 명분으로 완전히 위축시키고, 결국 채널이 무너진거죠. 이렇게 되면 관료들만 믿고 의지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본인하고 전혀 안 맞는 아젠다를 막 제기하게 된 겁니다. 한미 FTA 같은 게 좋은 예죠. 옳다 그르다를 떠나 그건 노무현 아젠다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뭐지? 뭐지?"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고, 그러면서 실망으로 이탈하게 되고, 마침내 확 무너진거죠.
윤여준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했죠?
이상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혼란을 준 거죠. 노무현의 몰락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본인의 말이라고 봐요. 말이 정말 너무 험했어요.
이철희 제가 약간 변론을 하자면, 말을 썩 잘 한 편은 아니었고 정제된 발언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보수 언론이 과도하게 쟁점화시켰다고 봐요. 사사건건 씹으면서 대통령 대접을 전혀 안 했어요.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윤여준 김대중 대통령 같은 경우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내건 것이라든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표방한 것이라든지,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사회안전망을 만든 것이라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철저히 인식했어요.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도 탈지역주의는 정확하게 시대 상황을 읽은 거예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라는 것은 인식했다는 거죠. 분명히. 그런데 구현하는 과정, 문제의식은 철저한데 문제 설정은 잘못됐다는 것, 그게 제가 주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망가진 거죠.
이상돈 저도 노무현 대통령의 안티였습니다만, 제가 느낀 것은 그래도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반대자를 치사하게 억누르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건 평가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윤여준 그렇죠. 그건 분명히 평가해야 할 부분입니다. 참여와 평등 같은 가치를 심어준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상돈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반대하면 기분이야 나빴겠지만, 권력을 이용해서 치사하게 괴롭히고 하는 짓은 안 했어요. 그거는 정말 평가해야 합니다.
윤여준 김대중 대통령 때도 사실 심하게 했거든요. 제가 당한 사람 중 하나 아닙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건 정말 안했어요. 그거는 정말 평가해야 합니다.
이상돈 그래서 역설적으로 조중동 등이 언론 자유를 만끽했어요.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우리가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우리 다 죽는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이철희 언론 자유는 만끽한 거 같아요. 진짜. 요새는 박근혜 씨라고만 해도 난리가 나잖아요.
이상돈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와 권위를 혼동한 것 같아요. 권위주의를 없애야 하는데 스스로 자신을 포함한 정권과 국가 제도의 권위마저 몰락시켜 버렸어요.
윤여준 그래서 권위주의를 부수려다 권위를 부쉈다고 그러잖아요.
이명박 대통령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이철희 사실 종편은 보수 입장에선 성공적 아니었나요? 이번 대선에선 정말 재미 봤잖아요.
이상돈 2번 찍을 사람이 종편 보고 1번 찍는 경우는 거의 업는데, 정치 무관심층을 투표장으로 글어온 효과는 있었다고 봐요.
이철희 저는 보수의 관점에서 결집하고 동원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봐요. 왜냐하면 종편을 제일 많이 보시는 분들이 나이 드신 어르신들, 주부, 자영업자거든요. 3대 주력 시청층인데 이 분들이 지역 공동체로 들어가면 메이저 그룹이에요. 직장인들은 다 직장 공동체에 들어가니까요. 이 세 주력 집단은 일과 시간 중에 종편을 보잖아요. 그러면 이야깃거리를 종편에서 공급받아요. 종편보시는 분들이 경로당 가서 얘기할 거리가 막 생기는 거예요. 종편에선 단일화 안 된다는 근거도 안철수와 문재인의 스카프 색깔이 달라서 안 된다는 식으로 아주 쉽게 말해요. 써먹기 좋죠.
이상돈 원래부터 생각 있는 계층은 표가 움직이지 않는데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휩쓸리는 거죠.
이철희 어느 정당이든 정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충실하게 지지논리를 못 가지고 있거든요. 후보 단일화 안 되는 이유를 스카프 색깔이 다른 걸로 제시하면 전파가 정말 잘 돼요.
이상돈 미디어법을 왜 이렇게 무리하게 통과시켜야 했는지, 또 종편을 네 개씩이나 허가해준 배경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여준 여론 형성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이었겠지요. 신문사들은 신문 매체가 쇠퇴한다, 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면서 위기감을 가지고 그리로 갔는데 우리나라의 광고시장이라는 것이 워낙 좁잖아요. 과잉경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뛰어들었어요. 그런 말 있었잖아요. 텔레비전 하면 빨리 망하고 신문 하면 천천히 망한다는 말까지 있었는데도 뛰어든 거 아닙니까?
이철희 활로를 찾은 것이 영상 매체인데, 그것은 신문이 가진 위기의식이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국 폭스뉴스의 예처럼 특정 성향을 강하게 띠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고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뉴미디어 쪽으로 광고가 많이 빠져나갔대요. 인터넷, 이런 쪽으로. 영상 매체 쪽을 포함해 전체 광고 지분이 자꾸 줄어들어요. 신문 매체의 위기는 방송을 가져도 그래도이고, 오히려 깊어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허가 과정에서 질질 끌면서 권력이 즐긴 측면도 문제지만, 네 개씩이나 해준 것도 문제예요. 특히 보수 언론인 조중동에게 하나씩 다 줬는데, 이건 통상적으로 말하는 기계적 균형에도 안 맞는 일이잖습니까.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언론이 이렇게 커지는 거는 좋아해선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윤여준 언론권력이 커지는 것은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작아진다고 안 좋아하지만 가만히 보세요. 종편을 신문사마다 다 허가를 내줬어요. 그런데 신문사마다 방송을 지고 가려니 엄청난 부담이 돼요. 종편이 안 되면 신문까지 다 망하게 생겼어요. 그러면 광고에 의존을 훨씬 많이 하게 돼요. 광고를 누가 많이 줘요? 기업, 그 중에도 대기업이죠. 언론이라는 게 대기업에 더욱더 종속되고 눈치 보게 돼요. 이게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냐고요.
이상돈 광고라는 게 지금 Jtbc 정보만 볼 만한 광고가 있고, TV 조선이나 채널에이는 상조회사, 어르신 보험이 제일 많아요. 비아그라 광고가 허용됐으면 아마 비아그라 광고로 도배됐을 거예요. 종편 광고시장은 대기업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대기업 제품이라는 것이 장년층 이하가 대상이지요. IT 제품과 내구재 만드는 대기업들은 노년층 보는 채널에 광고를 할 이유가 없어요.
이철희 방송 오래 하신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방송은 장치산업이라고 해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에요. 예컨대 종편 시청률 1% 올리려면 1조를 더 투자해야 한다는 거예요. 1조 갖고도 안 된다고 하는 얘기도 있죠. 기업 광고에 점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라서 정론지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그거 정말 심각한 문제인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신문과 방송이 함께 위기를 겪을 수도 있어요. 음식으로 치면 MSG를 너무 많이 친다고나 할까요.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이상돈 이명박 실정의 결과가 통계로 나와 있습니다. MB 5년을 거치면서 1인당 GNP가 겨우 3,000달러 늘었어요. 경제성장률이 낮고, 빈부 격차가 최대로 벌어지고, 최악의 공공부채를 만들었어요. 완전히 그랜드 슬램을 이룩했어요.
윤여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대단한 대통령!
이상돈 그나마 성장은 다 빚으로 한 겁니다. 국민들이 갚아야 할 몫으로 남았고 혜택은 소수에게 간 거지요.
윤여준 재임 중에 퇴임 후 살 집 구매하는 과정 좀 보세요. 이래놓고 국격은 혼자 찾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수치심이지 않습니까.
이철희 수치심이 없는 거 같아요. 2013년 가을 한강변에서 자전거 탄 거 좀 보세요. 녹조 다 끝난 다음에 찾아간 것부터가 후안무치의 극치잖아요.
윤여준 맑은 물일수록 녹조가 생긴다고 했다면서요? 정말 후안무치네요.
이상돈 보수들이 진영 논리에 갇혀서 묻지 마 지지했기 때문에 그런 진영 논리를 십 분 이용한 겁니다.
이철희 이념적 정체성이 보수라기보다는 천박성 아닐까요? 천민자본주의라는 말 쓰는데, 빗대면 천민정부 같아요.
윤여준 그것도 너무 고상해요.
이철희 약한가요?
윤여준 그 분은 학문적으로 정의하면 안 돼요.
이상돈 점잖게 표현해서 격이 없다.로 하죠. 그래서 제가 "이명박은 격이 없지만 박근혜는 격이 있다."고 하고 다녔는데….
이철희 어휴, 이명박 대통령에 비하면 그래도 확실히 격이 있죠. 어떤 격이냐의 문제는 있지만요.
이상돈 그 결과로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몰락을 불러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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