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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자체,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가치관 및 태도의 선택 등에 관한 문제의 성찰에그치지 않고, 사람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선택해야 하는 유언과 유언장 작성 문제, 의료 문제들(연명치료,치유치료, 호스피스 등)까지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직접 작성할 수 있는 ‘유언장, 의식이 분명할 때의 의료조치에 대한 요청서, 특정의료조치 요청서(Living Will), 의료 관련 가치관 표명서, 의료 대리인 지정서’ 등의 양식을 담은 ‘윌페이퍼(Will-paper)’를부록으로 제공한다.
■ 저자 유호종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철학과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 생명윤리학과에서 연수하였고, 중등교원, 서울대 강사, 연세의대 의료윤리 담당펠로우 등을 역임하였다. 철학과 윤리학을 주제로 많은 논문을 썼으며, 『의료문제에 대한 윤리와 법의 통합적 접근 : 의료법윤리학 서설』(공저),『고통에게 따지다』 등의 책을 썼다. 죽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떠남 혹은 없어짐-죽음의 철학적 의미』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으며, ‘안락사’,‘치료중단’, ‘죽음의 기준’, ‘임신중절’, ‘자살’, ‘사형’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글을 썼다.
■ 차례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다운
문제?문제!
두 개의 시선
대면해야 하는 이유
더는 미룰 수 없다
근원의, 궁극의 성찰
태어남의 이유
권리 밖에놓인 삶
다음 세대의 자리
떠남의 까닭
나쁘지만은 않은 녀석
그날 이후
무지의 베일
지옥에서천국까지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정성껏 준비하라
후회하지 않을 삶
영원한 ‘나’를 위한 준비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준비
해피엔딩
인생성적표
꼴깍사(寺)의염원
연명치료 대 호스피스
치유치료 대 호스피스
깨어 있는 날의 선택
몇 번까지 프로포즈?
선택의장애물
내가 선택하는 이유
있는 그대로 알 권리
나의 뜻과 바람
나의 자리 찾기
에필로그
참고 문헌
<부록>WILL-PAPER
유언장
의식이 분명할 때의 의료조치에 대한 요청서
특정 의료조치 요청서(Living Will)
의료관련 가치관 표명서
의료 대리인 지정서
살아 있는 날의 선택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다운
일반적으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문제에 주의하되 해결 노력 없이 걱정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문제를 외면하고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셋째는 문제를 주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문제에 있어서 ‘죽음에 주의하며 걱정만 하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죽음 외면하기’와 ‘죽음에 주의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중에서는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은 갈리는데 그것은 죽음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달리 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입장을 각각 ‘똥설’과 ‘된장설’ 정도로 명명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린 냄새가 나고 본래 더럽다고 느낄 만한 것이기 때문에 똥을 더럽다고 느끼는 것처럼 ‘똥설’에 따르면 우리가 죽음에 대해 불안과 공포, 고통을 느끼는 것은 죽음이 본래 그럴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죽음의 이런 본질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 주의하고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은 단지 걱정과 불안의 횟수만을 더하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구린 냄새가 난다고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일단 그 맛을 알게 되면 즐겨 찾게 되는 된장처럼, ‘된장설’에 따르면 죽음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고통 역시 이 본래 그럴 만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 주의하고 그 정체를 정확히 알면 죽음은 더 이상 두렵거나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죽음을 외면하기만 하면 죽음은 계속해서 무섭고 험상궂은 외피를 벗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똥설’과 ‘된장설’ 중 어느 것이 옳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똥설’에 따라 죽음을 외면하기보다는 일단은 ‘된장설’에 따라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 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죽음을 외면하게 되면 죽음의 정체를 밝힐 수 없어 ‘똥설’과 ‘된장설’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은 죽음 문제 해결 이상의 의의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사고가 삶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주의는 현실을 넘어선 차원으로 사고를 비약하게 해 줍니다. 지상에 머물던 시선을 돌려 먼 곳의 별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세상에는 더 이상 신비한 것도 완전한 것도 없다는 ‘인생 뭐 있어?’의 심정인 사람들도 죽음에서는 깊은 심연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근원의, 궁극의 성찰
죽음은 ‘모든 것은 낡고 흩어지게 된다.’는 자연법칙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법칙이 어떻게 관철되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죽음이 반드시 심각한 부상이나 질환 다음에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체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갑자기 죽는 경우는 없죠.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경우에도 실제로는 어떤 심각한 질환이나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질환이나 부상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기계가 멈추기 위해 낡는 것이 아니라 낡기 때문에 멈추는 것처럼 우리는 죽기 위해 병들거나 부상당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거나 부상당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이나 부상 중에서도 회복 불가능한 정도의 심각한 상태만이 죽음을 발생시킵니다.
우리가 죽음을 끔찍하게 여기는 원인 중 하나는 그것을 질환이나 부상과 한통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묶어 생각하니까 질환이나 부상에 따르는 고통과 괴로움이 죽음 자체의 속성이기도 한 것처럼 간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은 질환이나 부상의 단순한 결과일 뿐입니다. ‘사람이 병을 이겨내지 못할 때 그의 삶에는 종지부가 찍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죽음이 찾아온다.’라고 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질환이나 부상에서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후 모든 것을 끝내는 역할을 합니다. 질환이나 부상이 주는 극심한 고통과 비참함 속에서 인간을 구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 병마와 힘겹게 싸우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줄곧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점에 쉽게 동의할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낡게 마련이고 따라서 인간은 언젠가는 심각한 병이나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질환과 부상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공포와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이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해 울분과 공포, 혐오를 느끼기보다는 고마움과 든든함을 느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날 이후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죽음이 이 세상에서의 삶과 의미를 유한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허무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이 삶과 이 지상의 모든 것을 완전히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죽음으로 끝나는 삶이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면, 그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삶은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려면 그 영원한 삶을 이루는 유한한 삶의 시간들 역시 의미가 있다고 인정해야 하지요. 유한한 삶의 가치가 0이라고 했을 때 이 0에 0을 무수히 더한 영원한 삶의 가치도 0이 되고 마니까요. 이렇게 유한한 삶이 무의미하다면 죽음 없는 무한한 삶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으므로, 죽음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둘째, 죽음은 우리와 우리 삶의 ‘있음’은 붕괴시킬 수 있지만 ‘있었음’은 붕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 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우리 삶은 이 세상에서 단지 유한한 시간 동안 지속될 뿐이지만 그 유한함 속에서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삶이란 이 세상의 삶이 끝난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인간의 삶이 가질 수 있는 선의 실재’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 우리의 삶을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삶에 대해 큰 허무감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평상시에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리는 삶, 소유한 물건, 사람들과의 만남 등이 자기에게 당연한 것이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계속되리라는 착각 속에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 괴리가 깊은 허무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현재의 삶과 그 삶을 이루는 것들을 죽음 앞에서도 허무해질 수 없는 중요성과 가치를 가진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을 허무하고 무가치하게 느끼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죽음을 망각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고 살아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우리는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죠.
정성껏 준비하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준비
자기가 죽은 후 남겨지는 사람들에는 가족, 친지, 친구, 사업상의 동료 등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중 특히 가족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으며, 그들을 위해 준비할 것도 가장 많습니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혀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가족들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게 되거나 가족 간의 의견 대립으로 큰 불화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의사 표명이 필요한 사항
자기가 남기는 육체에 대한 의사 표명이 우선 필요합니다. 자기가 뇌사 상태에 빠졌거나 죽었을 때 장기나 시신을 기증하길 원하는 사람은 미리 가족들에게 이 점을 알리고 자기 소원대로 기증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설득시켜 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죽음 이후 특정한 형태로 장례나 추모 절차가 이루어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장례나 추모 방법에 대해서도 자기 바람을 분명히 밝혀 두어야 합니다. 장례나 추모가 어떤 방법으로 행해지든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가족들 간에 장례와 추모 방법을 둘러싼 갈등이 예상될 때는 자기가 그 형태를 미리 지정해 둠으로써 이런 갈등을 방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례와 추모 방법을 둘러싼 갈등은 주로 가족들 간의 종교 차이에서 온다고 합니다.
의사 표명이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안은 자기가 남기는 재산에 대한 것입니다. 유산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갈등과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고인이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도 법에 유산 분배 기준이 나와 있긴 하지만 그 기준은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유산 분배의 정확한 지침이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시신 처리, 장례 및 추모 방법, 유산 분배에 대한 자기 의사는 평상시 가족들에게 말로써 밝혀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의사를 더 확실하게 관철시키고 사후 가족 간의 불화를 더 확실히 막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를 받는 유언의 형태로 자기 의사를 밝혀 둘 필요가 있습니다.
깨어 있는 날의 선택
몇 번까지 프로포즈?
어떤 가치관이나 도덕관에 입각한다면 끝까지 생명연장을 위해 노력하다 맞이하는 죽음이 바람직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최대한 치유치료(병을 없애 환자를 낫게 함으로써 의식과 신체 기능을 회복시키고 자연 수명을 누리게 하는 치료)와 생명연장치료(환자의 병 자체는 낫게 할 수 없지만 생명은 연장시키는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요. 반면 다른 가치관이나 도덕관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죽음이란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입니다. 그런 죽음을 맞이하려면 생의 마지막 시기의 어느 시점에서는 모든 치료를 중단하거나 완화?호스피스 치료(말기 환자나 그 이외의 환자에게 행하는 것으로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어 삶의 질을 유지시키기 위한 치료)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가치관과 도덕관을 잘 살펴 그에 입각했을 때 바람직한 죽음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찾아내어 목표로 정했다 하더라도 그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최대한의 생명연장 이후 맞이하는 죽음을 바람직하게 보는가, 품위 있는 죽음을 바람직하게 보는가에 따라 바람직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계획이 달라지므로, 이 둘을 구별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최대한의 생명연장 계획
최대한의 생명연장이 목표일 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은 단순합니다. 실력 있고 신뢰할 만한 병원과 의사를 찾아가 치유치료와 생명연장치료를 계속 받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말기의 시간 중에는 환자의 생명연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명치료나 치유치료가 전혀 없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어떤 적극적 치료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생명 연장에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기암 환자의 경우, 항암치료가 암세포를 줄이는 효과에 비해 정상세포를 파괴하여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키는 부작용이 더 커지는 시점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최대한의 생명연장치료를 받기로 한 사람은, 예를 들어 죽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작별 인사를 의식이 분명하고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 미리 해두어야 합니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상적인 사고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기 전에 미국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방송을 했습니다. 그후 중증 알츠하이머 병 상태에서 수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요. 그는 삶의 기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는 별로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 품위 있는 죽음의 계획
품위 있는 죽음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적극적 치료에 의해 연장되는 삶의 질이 나쁘지 않을 때에는 이런 치료를 받아 삶을 연장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치유치료나 연명치료에 의해 연장되는 삶의 질이 낮을 때, 또는 이 치료들을 계속하면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힘들어질 때에는 이제 치유치료와 연명치료를 중단한 다음, 남은 삶을 최대한 누리는 데와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데 몰두해야 합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계획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이 전환의 시점, 즉 생명연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것을 그만두고 품위 있는 죽음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시점을 잡는 것에 대한 계획입니다
이 전환의 시점을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시점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그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 주기도 힘듭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끼리도 ‘어느 정도의 삶부터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는 질 낮은 삶인가?’, ‘품위 있는 죽음이 단순한 생명연장보다 얼마나 더 가치 있는 것인가?’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생각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 시점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가치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환자 본인입니다.
선택의 장애물
현재 우리 의료 현장에서 말기 및 임종기 환자의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적 주체는 환자가 아닌 환가 가족이나 의사입니다. 환자의 마지막 시간과 죽음의 방식이 환자 본인의 뜻에 의해 결정되지 못하고, 대신 가족의 가치관과 환자에 대한 가족의 태도에 의해서, 또는 환자가 어떤 병원에 가고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품위 있는 죽음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호스피스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말기 환자나 임종기 환자 중 호스피스 치료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비율은 매우 작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런 치료를 시행할 시설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 부족한 시설마저 의사들의 이해 부족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알 권리
환자 본인을 위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사실을 잘못 파악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사고한다고 해도 결론이 잘못되게 마련이죠. 이것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 중에도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 때 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하느냐를 두고 고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대로 알려 주었을 때 대개의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그 중에는 절망 때문에 병이 더 악화되어 예상보다 빨리 죽음에 이르는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륜 있는 의사들이 후배 의사에게 권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환자가 물어오는 만큼 알려주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쁜 소식에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 환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묻지만 그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환자는 잘 묻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래는 환자가 자기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를 선택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들의 항목입니다. 이 항목들을 참고로 질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의 현재 병명
-병의 심각성 정도
-선택 가능한 치료의 종류
-각 치료들의 목적 및 예후
-각 치료들의 방법
-각 치료들의 후유증, 합병증 및 그 발생 비율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았을 때의 예후
-본인이 주의하거나 지켜야 할 사항
에필로그
상대의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하던 시절, 온갖 괴소문에 마음 졸이던 신부가 새 신랑의 얼굴을 처음 보고 한 시름 놓듯이, 죽음의 정체를 제대로 보기만 해도 죽음 문제의 상당수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대개 그렇듯 죽음에도 행동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제도와 관행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은 이런 준비의 필요성을 더 크게 만듭니다. 제도와 관행이 잘 갖추어진 분야에서는 개인은 누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기가 가령 말기 환자가 되었을 때,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좀 더 바람직하게 죽음에 대처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 나가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도와 관행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그 이전에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구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죽음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자기의 뜻과 바람을 분명히 밝혀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언장과 함께 자기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과 의료조치에 대해 미리 선택하게 하는 문서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이런 문서들을 작성해 두는 것이 수십 년 동안 노력하여 보장자산을 마련하고 종신보험료를 납부하는 것보다 나와 내 가족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록) __________________________의 WILL PAPER
유언장
1. 성명 印
주민등록번호
주소
작성일
작성장소
2. 시신처리, 장례방법, 추모방법에 대한 바람
3. 재산 및 물건 처리 방법
4. (기타) 남기고 싶은 말
의식이 분명할 때의 의료조치에 대한 요청서
(내가 원하는 항목(들)에 ○ 표시, 원하지 않는 항목(들)에 × 표시하였습니다.)
_____________ 나는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는 한 나의 질환 상태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알게 되길 원하며, 진료에 대한 모든 결정도 내가 내릴 수 있길 원합니다.
_____________ 나는 의사가 나의 건강 회복과 생명 연장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알려 주길 원하며, 나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시술을 적극 권해 주길 원합니다.
_____________ 나는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을 때라도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나의 질환 상태와 치료에 대한 모든 설명을 아래에 지정하는 사람이 대신 듣고 또 진료 결정도 대신 해 줄 것을 원합니다.
우선순위 1 성명 관계
우선순위 2 성명 관계
우선순위 3 성명 관계
작성자 : 印
주민등록번호 :
주소 :
작성일 : 년 월 일
작성장소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